‘26년 독재’ 벨라루스 대통령은 왜 자동소총을 들었나

입력 2020-08-24 13:32 수정 2020-08-24 14:26
23일(현지시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자동소총을 들고 관저로 향하고 있다. 시위대가 관저 주변에서 물러선 직후였다. 트위터 캡처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직접 자동소총을 집어 들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야권의 저항시위를 향해 실탄 발포를 넘어 더 큰 무력사용을 경고하는 공포의 메시지다.

2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국영통신 벨타는 관저로 이동하는 헬기에 탄 루카셴코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영상 속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근처에 있던 시위대가 대응이 뜨거울 것을 알고 쥐새끼들처럼 흩어졌다”고 말한다. 대통령 관저 근처에 모였던 시위대가 경호부대의 총격 진압이 두려워 도망갔다는 비아냥이었다.

이날 또 다른 친정부계 텔레그램 채널도 방탄복을 입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영상을 업로드했다. 올블랙 차림으로 헬기에서 내린 그의 왼손에 들려 있는 건 다름아닌 자동소총이었다. 당시는 시위대가 막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해산한 뒤였다. 그는 대기하던 경호요원과 긴밀하게 대화하며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시위를 향해 무력진압 의지를 과시하려는 목적의 영상이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관저로 가는 헬기에서 통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관저 주변을 경비하는 경호관료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벨라루스 시민들은 지난 9일 실시한 대선 개표 결과 루카셴코 대통령이 80.0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이기자 재검표와 선거 무효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2주 넘게 벌이고 있다. 1994년부터 벨라루스를 26년 연속 통치 중인 그가 불법과 편법으로 6기 집권에 성공했다는 항의의 목소리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도 수도 민스크 독립광장에는 수만명의 시민이 모여 부정선거 무효화와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몸에 벨라루스 독립을 상징하는 백색·적색·백색의 깃발을 두르고 손에 꽃을 쥔 채 행진했다.

일부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 앞까지 진입해 폭동진압부대 ‘오몬’과 대치하기도 했다. 대원들이 친 방어벽 근처에서는 ‘(루카셴코는) 물러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민스크 외에도 남동부 도시 고멜, 서부 국경도시 그로드노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2일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던 경찰은 이날은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

2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시민들이 수도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 물결로 가득차 있다. EPA 연합뉴스 벨라루스 시민들이 수도 민스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루카셴코 대통령은 서방세력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는 전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인접한 그로드노를 방문해 시위 주동자와 조종자를 색출하라고 보안기관에 지시했다.

이어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시위를 기획,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야권이 서방의 지원을 받아 정권교체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또 서부 국경에 나토군이 배치됐다고 주장하면서 국방부와 서부지역 군부대에 지역방위를 위해 모든 조처를 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벨라루스 대선 불복 시위가 점점 악화일로를 걷는 모양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