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고올~” 챔스 결승전 새벽, 홍대 펍은 코로나를 잊었다

입력 2020-08-24 10:25 수정 2020-08-24 16:14
연합뉴스. 국민일보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23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고민하고 있다며 “가급적 집에 머물고 사람들과 접촉할 때는 마스크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날 밤, 서울 홍대와 이태원의 스포츠펍은 정 본부장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님들로 북적였다. 24일 오전 4시부터 시작된 2019-20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문이었다.

국민일보는 24일 새벽, 챔피언스리그 단체관람이 진행되는 홍대와 이태원 스포츠펍을 방문해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사람 간 2m 거리두기, 실내 50인 이상 집합 금지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지켜봤다.

(*현장 취재를 위해 방문한 기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거리를 둔 채 지켜봤음을 알립니다.)

연합뉴스

‘노마스크’ 40명, 좁은 지하 펍에 다닥다닥

새벽 2시30분, 해외축구 단체관람의 성지로 알려진 홍대 A스포츠펍에 전화를 걸어 “오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틀어주느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벌써 줄을 서기 시작했다”며 “오늘은 40명밖에 못 들어오니 빨리 오셔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오전 2시47분쯤 펍에 도착해 체온을 측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팬들이었다. 서울시는 이날 0시부터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자리에 있던 23명 중 11명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나머지 12명도 마스크를 턱에 걸친 ‘턱스크’ 상태였다.

곧이어 도착한 손님들도 자리에 앉자마자 마스크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놨다. 킥오프가 시작된 오전 4시, 가게는 입장 정원 40명을 모두 채웠지만 마스크를 제대로 쓴 사람은 기자 2명과 직원 2명뿐이었다.

2m(최소 1m) 거리두기도 이뤄지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40명이 넘는 사람이 몰리다 보니 어깨와 어깨가 닿기 일쑤였다. 몇몇은 자리가 부족해 바닥에 앉기도 했다. 득점 찬스 등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와” “슛” 고함을 지르며 뒤엉키는 탓에 좌석을 통한 거리두기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다.

해당 업장이 환기가 어려운 지하에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창문은 고사하고 지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출입문 역시 경기 내내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에서 경기를 관람한 S씨(33)는 “코로나가 걱정되긴 하지만 이게(술집 단체관람이) 크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집에서 혼자 보는 축구가 무슨 재미냐”고 말했다.

A스포츠펍과 370m 남짓 떨어진 B스포츠펍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교적 손님 수가 적어 거리두기는 이뤄지고 있는 듯 보였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서울 홍대 스포츠펍 고객들이 24일 새벽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턱에 걸친 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11명의 손님 중 한 명만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다.이홍근 객원기자

이홍근 객원기자

모이긴 했지만 … 방역수칙은 꼼꼼히

홍대 상황은 한 차례 된서리를 맞았던 이태원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이태원에 위치한 C스포츠펍은 꼼꼼하게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 하프타임이 지난 오전 5시쯤 펍을 찾은 기자에게 종업원은 신분증과 체온 측정, 명부 작성을 요구했다. 명부를 확인하고는 “글씨를 명확하게 써 달라”며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해서 그렇다”고 재차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이태원발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한 터라 긴장감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어 종업원은 “거리두기를 지켜야 해 지정된 자리에만 앉으실 수 있다”며 기자를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실제로 약 25명의 손님들은 한두 칸씩 띄어 앉아 있었고 빈 좌석엔 ‘착석 금지’ 표지가 붙어 있었다. 덕분에 후반 18분 바이에른 뮌헨의 킹슬리 코망이 결승골을 넣어 펍이 들썩일 때도 손님들은 뒤엉키지 않고 최소 1m 거리는 유지할 수 있었다.

마스크 착용 여부도 꼼꼼히 체크했다. 입장 시 종업원이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꼭 마스크를 쓰고 계셔야 한다”고 안내했다. 마스크를 내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에게는 종업원이 즉시 경고를 줬다. 음료를 제조하는 종업원들 역시 마스크를 코까지 덮어 올바르게 쓰고 있었다.

이날 C스포츠펍에서 경기를 관람한 프랑스인 미코씨는 “코로나 자체는 무섭다”면서도 “우리나라(프랑스)는 길거리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는 모두가 마스크를 잘 쓰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이태원 C스포츠펍의 고객들이 24일 새벽 모두 마스크를 제대로 쓴 채 앉아있다. 이홍근 객원기자

“방역수칙이 핵심 아냐 …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

홍대 스포츠펍과 비교해 이태원의 조치는 모범적이었지만 전문가들은 그 정도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격상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은 사실상 그에 준하는 대응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수칙 준수와 관련 없이 단체 스포츠 관람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금 이 시기에 실내에서 모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50명 이내로 제한한다는 게 49명까지는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지 가급적 모이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거다. 필수적인 사회활동이 아니면 지금과 같은 시기에 만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실내에서 단체 관람을 했다면 더욱 적절하지 않다. 경기에 이입하면 옆 사람과 접촉이 많아지고 비말도 튀어나와 전파 위험이 커진다. 많은 분들이 마스크를 안 쓰면 눈치가 보여서 대충 얼굴에 걸쳐두는 경우가 많다. 누가 뭐라고 하면 그제야 살짝 올리는데 이는 마스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무조건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홍근 객원기자
김지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