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세계 랭킹 304위의 ‘무명’ 소피아 포포프(28·독일)가 2020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메이저 대회 사상 가장 낮은 랭킹으로 우승하면서 여자골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포포프는 24일(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로열트룬골프클럽(파71·6756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AIG 위민스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2개를 묶어 3언더파 68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7언더파 277타를 기록해 단독 2위 재스민 수완나뿌라(태국)를 2타 차이로 따돌리고 정상을 밟았다.
포포프는 2014년에 프로로 입문하고 이듬해 LPGA 투어 신인으로 데뷔했다. 그 이후로 투어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수확했다. 처음으로 손에 넣은 우승 상금은 67만5000달러(약 8억원)다.
포포프는 2006년 여자골프 세계 랭킹을 도입하고 가장 낮은 순위에서 메이저 대회를 정복한 선수가 됐다. 종전 최저 랭킹은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자인 해나 그린(호주)의 114위다. 독일 여자골프 사상 첫 메이저 챔피언 타이틀도 획득했다.
포포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4개월을 넘게 쉰 투어의 지난달 31일 재개 대회로 펼쳐진 드라이브온 챔피언십에서 아너 판 담(네덜란드)의 캐디로 나섰지만 주목을 받지 못할 만큼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LPGA 투어 출전권 유지마저도 포포프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포포프는 데뷔 2년차인 2016년에 LPGA 투어 출전권을 상실했다. 조건부 출전으로 간간이 출전한 뿐이었다. 올 시즌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지만 불합격해 2부 투어로 내려갔다.
이 과정에서 병과 맞서 싸워야 했다. 포포프는 투어 데뷔 시즌인 2015년에 체중이 11㎏ 넘게 줄어 병원을 스무 곳을 전전했고, 3년이 지나서야 라임병 진단을 겨우 받았다. 라임병은 진드기에서 옮는 보렐리아균 감염이 원인으로, 혈액을 타고 다른 부위에 퍼져 관절염, 심장질환, 신경계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
포포프는 대회를 마친 뒤 라임병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심할 경우 10가지 증상이 나타났다. 정확한 병명을 초기에 알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금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포프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7일 개막한 마라톤 클래식에서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결원이 발생하자 포포프에게도 출전 기회가 돌아갔고, 공동 9위로 완주해 AIG 위민스오픈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출전한 올 시즌 첫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무명 신화’의 서사를 완성했다.
포포프는 “1주일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난 6년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은퇴할 뻔했지만 이렇게 이겨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이날 5언더파 66타로 ‘데일리 베스트’를 기록하며 순위를 9계단이나 끌어올렸다. 최종 합계 1언더파 283타를 기록해 단독 4위로 완주했다. 이번 대회에서 언더파 스코어를 쓴 선수는 박인비를 포함해 4명뿐이다.
박인비는 1라운드에서 6오버파 공동 88위로 밀려나지 않았으면 우승 경쟁도 가능했다. 박인비는 대회를 마친 뒤 “2라운드부터 잘 경기한 것에 만족한다. 다음주 미국 대회부터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AIG 위민스오픈을 통해 6개월 만에 LPGA 투어로 복귀한 박인비는 오는 28일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에서 개막하는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