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광화문 집회 허가 판사 해임 청원’ 우려한 이유

입력 2020-08-23 13:14 수정 2020-08-23 14:08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좌)가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 : 이념·세대·문화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보수단체들(우)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주변에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광복절에 서울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판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진 전 교수는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판사들을 해임하라’는 국민청원을 거론하면서 “10건 중 8건은 기각했고, 2건을 허용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2건에 나머지 집회에 참석하려던 이들이 묻어서 집회하다 보니 이 사달이 났다.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약할 때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판사는 그 2건에서는 집회를 금지할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 거로 보인다. 그럼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 전 교수는 “판결을 내릴 당시 대형집회에 따른 집단감염 사태는 보고된 사례가 없었다. 아울러 허용된 두 집회에 다른 이들이 끼어들 것이라 예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설사 예상했더라도 추상적 가능성이 헌법적 권리를 제약할 법적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사법부를 옹호했다.

진 전 교수는 “대중의 집단행동으로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다수결 민주주의자들은 인민의 의지를 지도자를 통해 직접 표출하려고 한다. 히틀러가 국민의 의지를 직접 대변하는 ‘국민재판소’를 만든 걸 기억해 보라”며 “청와대를 향한 판사 해임 청원은 행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해야 한다는 요구다. 민주주의 삼권분립 원칙을 거스르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판사의 이름을 딴 금지법 제정도 우려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김용민·김남국 의원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을 거론하며 “대깨문(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은어)들 지지받겠다고 이 또라이들이 그런 법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이원욱 의원이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8·15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 청원’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수도권 폭발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알렸다. 확진자가 속출하는 사랑제일교회 중심으로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위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판사는 해임 혹은 탄핵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판사들 비판에 나섰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서울행정법원이 공개한 결정문 전문(全文)을 정리한 기사를 공유하며 “재판부가 해야 할 일은 변명이 아니다. 국민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법원이 이를 두고 ‘그래서 우리를 어쩌겠는가’라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대단히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회시위법 및 행정소송법 개정안인 이른바 ‘박형순 금지법’을 내놨다. 이 의원은 22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도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 박형순 판사 등을 언급하며 “지금의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만든 그들을 국민은 ‘판새’(판사를 비하하는 단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이 판사봉을 잡고 다시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