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에 방치된 전동킥보드들…무책임한 공유킥보드 사업

입력 2020-08-22 05:01
서울 송파구 한 초등학교 앞 자전거 도로에 공유 전동킥보드가 3대 세워져 있다. 사진을 제보한 독자 이모씨는 "학교 앞에 일주일 정도 킥보드가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서울 강남구 한 주택가에 사는 최모(38)씨는 최근 공유 전동킥보드 때문에 자동차가 찍히는 사고를 당했다. 최씨의 주차된 차 옆에 전동킥보드가 세워진 것을 보고 곧 치우겠거니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이튿날 전동킥보드는 치워져 있었지만 최씨의 차 옆 부분이 쇳덩이로 찍힌 듯 찌그러져 있었다.

최씨는 “전동킥보드가 쓰러지면서 찍힌 자국인 것 같은데 블랙박스 사각지대인지 확인이 안 되더라”며 “어디에 손해 배상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공유 전동킥보드 사업자와 사용자는 증가하는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최씨 사례처럼 전동킥보드를 둘러싼 문제와 갈등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정부가 올해 안에 공유 전동킥보드 주차와 거치장소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했으나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뚜렷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공유 전동킥보드 업계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사업을 운영 중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 개별 사업자들이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지난 20일 국토교통부가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 활성화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당장 법 시행이 어려운 만큼 주차 문제에 대한 규율을 자율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개별 사업자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나 의지가 엿보이지는 않는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모씨(41)도 공유 전동킥보드 주차 문제로 큰 불편을 겪었다. 주택가 골목 진입로와 주차장 옆 곳곳에 전동킥보드들이 무분별하게 주차돼 있어서 차량 통행에 문제가 생겼다. 이씨는 집 근처 골목 진입로에 사흘 넘게 주차된 전동킥보드 탓에 차량 통행에 어려움을 겪다가 직접 무거운 전동킥보드를 들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씨는 골목길, 주차장 앞, 학교 앞 자전거도로 등에 전동킥보드가 널려 있다며 이 사실을 송파구청에 신고했으나 “관리를 잘하도록 업체에 전달하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실제로 이씨의 집 앞에 주차된 전동킥보드는 사흘이 넘도록 아무도 안 치웠고, 학교 앞 자전거도로에도 일주일 정도 방치돼 있었다.

이씨는 “아이들이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만지는 것도 여러 차례 봤는데 어쩌다 킥보드가 넘어지는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며 “구청에서는 업체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지자체가 나설 만한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해서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 독자 제공


우리나라에서 공유 전동킥보드 사업을 하는 업체는 19개이고, 서울 15개 지자체를 포함해 부산과 제주 등에서 운영 중이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19개 업체가 보유한 전동킥보드는 약 3만대다.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해 있다 보니 업계의 자정 노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대표적인 공유킥보드 서비스 ‘씽씽’을 운영하는 피유엠피는 ‘바른 주차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불편한 장소에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발견하면 앱을 통해 즉시 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통행에 방해를 주거나 사유지에 방치된 킥보드를 발견했을 때 앱을 통해 신고하면 2시간 안에 기기를 수거하는 서비스다.

하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씽씽은 아파트 단지 내 또는 사유지 또는 스쿨존 등을 ‘주차 금지 구역’으로 제한해두고 있고, 금지 구역에서는 주차가 불가능하다. 이 밖의 지역에는 그러나 어디든 주차할 수 있기 때문에 ‘바른 주차 장소’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사용자가 지하철역 앞이나 주택가 주차장 옆을 ‘바른 주차 장소’라고 판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갈등이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방치된 킥보드를 신고하는 방식도 문제다. 2시간 안에 기기를 수거하도록 신고하려면 방치된 전동킥보드 앱을 스마트폰에 깔아야 한다. 킥보드에 표시된 전화로도 신고할 수 있다고 하나 접수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기기를 수거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도 노력하고는 있지만 지금으로써는 사용자들의 선의와 양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 등과 협의해서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