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김수빈(27·사진)씨의 소나기는 지난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 시작됐다. 3년간의 첫 직장생활을 끝내고 떠난 이집트가 그를 워킹홀리데이(워홀)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었지만 꿈은 코로나19에 무너졌다. 출국을 앞두고 닥친 자가격리 2주가 워홀을 포기하게 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외려 밀려났다. 직업은 없었고, 저축한 돈도 잃었다. 잠시 내리는 비라기엔 너무 거셌다.
계획이 어그러지자 조급해졌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경력을 살려 재취업할 곳을 찾았다. 그러다 문득 사직서를 냈던 이유가 떠올랐다. 발길을 돌려 출발점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비 피할 곳을 찾는 대신 흠뻑 맞기로 했다. 다시 취업준비생이 됐다. 여전히 폭풍우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그가 13일 국민일보와 만나 털어놓은 이야기다.
첫 직장, 꿈꾸던 미래는 없었다
김씨는 2016년 가을 첫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연봉, 통근시간, 복지가 만족스러운 제조회사의 경영지원팀에 합격했다. 마냥 즐거웠던 회사생활에 지쳐간다고 느낀 것은 밀려드는 서류의 양을 인지했을 때다. 부지런히 할당량을 끝내도 똑같은 서류가 책상 위에 쌓이는 것을 보면서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회사가 급성장하면서 답답함은 더 자주 찾아왔다. 퇴근 직전에 회의가 잡히는 일이 잦아졌고, 금요일 저녁에야 주말 근무를 알게 되는 날도 생겼다. 토요일 오후 상사의 연락을 받고 출근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머리숱이 적어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병원을 찾았다가 스트레스성 탈모 진단을 받았다. 100만원이 넘는 비용과 6개월간의 치료 기간을 감당하며 김씨는 “많이 지쳐 있구나”라고 그제야 자각했다.
무엇보다 ‘내 적성과 안 맞는다’는 깨달음이 김씨를 괴롭혔다. 연봉, 복지만 고려했을 뿐 ‘이 일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빠뜨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선배들이 좋았지만 그들의 모습에 자신이 꿈꾸는 미래는 없었다. 김씨는 “일상처럼 퇴사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 사직서를 냈다. 극적인 과정은 없었다. 점심을 먹던 중 서두르지 않으면 몇 년이나 더 발이 묶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고, 그날 오후 퇴사 의사를 밝혔다. 늘 웃고 다녔던 김씨의 폭탄 발언에 다들 당황했다. 김씨는 “후련했다”며 “후임자가 올 때까지 한 달쯤 더 일하다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 어려” 한마디에 낸 용기, 코로나에 깨졌다
상상만 해도 낯선 나라, 이집트로 떠난 것은 퇴사한 지 2개월쯤 지난 지난해 10월이었다. 세계여행을 하다가 프리다이빙 강사로 이집트에 정착한 동생이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김씨는 고민 끝에 항공권을 끊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볼 작정이었다. 세계여행자들의 쉼터로 불리는 도시, 다합에서.“다합에서는 ‘세계여행 1년차 이상 있나요’ 하면 대부분이 손을 들어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저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온 분도 있었죠. 거기서 자주 들었던 말이 ‘수빈아 다합스럽게 놀아’였어요. 제가 퇴사 후의 불안감 때문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을 빽빽하게 세웠거든요. 그분들은 편안하게 하루를 즐겼고요. 그때 생각했죠. ‘내가 아직 한국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라고요.”
김씨는 다합에서만큼은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배우고 싶었던 수상스포츠에 몰두하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했다. “너도 아직 어려”라는 한 여행자의 말은 김씨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 충격은 곧 “나도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로 이어졌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돌아와 워홀 준비에 돌입했다. 올해 여름 떠나는 항공권을 구입하고 6개월 과정의 어학원을 등록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정도의 회화 실력을 갖추고 가는 게 좋다는 주변 경험자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목적지는 호주로 정했다. 다합에서 만난 한 부부가 직접 촬영했다며 보여준 영상 속 호주의 모습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쳤는데 1월 초,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19였다.
자가격리 14일의 기억
김씨는 6월 초 어학원에서 오전 수업을 듣던 중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저녁반에서 확진자가 나왔으니 모든 수강생은 신속히 귀가하라는 학원 측의 안내 문자였다. 남 일인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피부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던 중 오전반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 10명을 넘겼고, 강사진을 포함한 학원 관계자 전체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김씨는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던 학원 친구들이 하나둘씩 확진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면서 “겨울에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품었던 기대가 점점 사라졌다”고 했다.가족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방에서만 생활하는 14일간의 자가격리를 거치며 김씨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그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져 처음에는 화가 났다”면서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그 분노는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자가격리 해제 전 마지막 검사를 받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뉴스로 확진자 현황을 접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구나, 생명이 걸린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끝내 체념했다.
“그 2주를 보내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부모님도 출근을 못하게 돼서 죄송했고, 고집을 피워 호주에 갔다가 확진된다면 모두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았죠. ‘가지 말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라고 결심했어요.”
퇴사 1년 차 취업준비생 “무섭지만…”
1년 전 회사를 박차고 나온 김씨는 현재 카페 아르바이트생이고, 취업준비생이다. 그는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뒤 한동안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이전 회사와 비슷한 곳의 채용공고를 뒤졌다”며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되돌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걸 멈췄다”고 했다. 김씨는 그때부터 장기전을 준비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저축했던 돈은 취업 상담 등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쏟았다. 얼마 전 마음이 맞는 지인 2명과 시작한 유튜브도 이런 노력 중 일부다. 자신이 활동적이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김씨는 “원래 남들처럼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을 썼는데, 지금은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는다”며 “그 자소서를 받아주는 회사라면 잘 다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김씨는 취업하고픈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관련 역량을 익히고, 자소서를 다듬는 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불안함을 어떻게 견디냐고 묻자 그는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제게 회사생활은 버티는 거였어요. 안정적인 직장만 구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인생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이더라고요. 압박감 때문에 대학 졸업 3개월 만에 취업했지만 그 결과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는 거였잖아요. 이미 경험해봤으니 차라리 지금이 좋아요.”
김씨는 “사실 지금도 무섭다. 아침에는 괜찮다가도 저녁에는 ‘아무도 날 안 받아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김씨는 자신의 속도대로 걸어갈 생각이다. 빗줄기가 아무리 거세도 소나기는 결국 그치게 마련이니까.
“코로나라는 비극이 우리에게 불행으로 남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삶의 계획이 엎어지고, 우울하고, 무력감을 느낄 수 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힘들 땐 힘을 빼도 괜찮아요. 포기만 하지 말아요, 우리.”
삶의 계획이 엎어지고, 우울하고, 무력감을 느낄 수 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힘들 땐 힘을 빼도 괜찮아요. 포기만 하지 말아요, 우리.”
[소나기] 소소한, 나와 당신의 이야기. 거센 비바람에 지쳤을 때, 잠시 쉴 곳이 필요할 때 들러주세요. 당신과 꼭 닮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다독여 줄 거예요.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