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라이프> 새끼 품은 ‘웃는 돌고래’, 너는 어쩌다

입력 2020-08-21 05:00 수정 2020-08-21 05:00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주시 삼양동 검은모래해변을 찾은 한 피서객이 신경통 등에 효능이 있다는 검은모래 찜질을 하고 있다.

제주의 여름은 바다에서 시작되고 바다에서 절정을 맞는다.

짠 내를 지겹게 맞고 사는 제주 사람들도 한여름 해수욕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백숙을 시켜 먹고, 검은 모래 해변에 몸을 쑥 밀어 넣으며 이열치열 무더위를 견딘다. 밤바다를 수놓은 한치잡이 배들의 화려한 불빛은 제주 여름바다가 주는 시원한 선물이기도 하다.

올해는 앞선 긴 장마로 수온이 낮게 형성돼 활 한치가 ‘금치’가 됐지만 자리나 한치 전복을 잘게 썰어 식초 푼 된장물에 얼음과 띄어 먹는 물회는 “지금이 바야흐로 여름”임을 알리는 제주의 대표 바다 진미다.

여기에 제주의 여름 바다를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돌고래다. 푹푹 찌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여유롭고 리듬감 있게 수면을 넘나드는 돌고래 무리는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제주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보물섬임을 상기시킨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해안가에서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에만 서식한다. 현재 120여마리만 남은 것으로 알려진 보호생물종이다.


하지만 제주의 바다가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일 오전, 제주시 한림항 인근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 30여명의 대학 연구진이 모였다. 국내 환경단체도 함께였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엔 국내 토종 돌고래 상괭이와 제주에만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가 부검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동해에 주로 서식하는 참돌고래도 보였다. 이들은 제주의 해안에서 사체로 발견돼 냉동 보관해 온 개체들이다.

20일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 30여명의 국내 대학 연구진과 국내 환경단체(세계자연기금, 핫핑크돌핀스)가 모여, 최근 제주에서 사체로 발견된 해양보호생물종의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진행하고 있다. 문정임 기자

최근 제주에서는 돌고래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사람의 웃는 모습을 닮아 ‘웃는 돌고래’로 불리는 상괭이의 경우 한해 30~40마리가 죽은 채 해안으로 떠밀려온다. 외관상 불법 포획된 흔적이 없어 사망원인을 두고 궁금증이 커졌고, 비영리 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의 지원으로 국내 여러 대학 연구진들이 이날 제주를 찾아 공동 부검에 나선 참이었다.

세 종류의 돌고래가 나란히 부검대에 올랐다.

주로 동해에 사는 참돌고래는 제주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참돌고래 중 일부가 간혹 먹이를 따라 움직이다 제주까지 오기도 한다. 예전에 발견된 참돌고래 위에서는 오징어가 가득 나오기도 했다고 이날 현장에 있던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부 교수는 귀띔했다.

참돌고래 옆에 누운 남방큰돌고래는 양식장이 많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 자주 출몰하는 제주 토착종이다. 지금은 그 수가 120여 마리로 줄어 해양수산부가 보호 생물로 지정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제주시 구좌읍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 생태를 관찰하던 중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안타까운 모습을 포착했다. 연합뉴스, 뉴시스

제주도는 제주에만 사는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서식지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추진 중인데, 최근 국립수산과학원이 이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모습이 발견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새끼 돌고래는 이미 오래전 죽은 듯 꼬리 부위를 빼고는 형체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어미 돌고래는 자신의 몸에서 새끼의 사체가 멀어지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새끼를 주둥이 위에 얹거나 등에 업기를 반복했다. 돌고래는 모성애가 유난한 개체다.

'웃는 돌고래' 상괭이 사체 부검이 시작됐다. 문정임 기자

남방큰돌고래 옆에서는 상괭이 사체 부검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상괭이는 날카로워 보이는 이름의 어감과 달리 얼굴 생김이 사람의 웃는 모습을 닮아 ‘웃는 돌고래’라는 귀여운 애칭을 갖고 있다.

상괭이는 국내 토종 돌고래로 서해와 남해에 주로 서식한다. 제주에서는 살아있는 상괭이가 발견된 적이 없다. 대부분 죽은 채 밀려온다.

이날 부검대에 오른 상괭이도 죽은 채 제주로 밀려왔다. 그런데 이 상괭이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만삭의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조심스레 절개하자 자궁 속에 든 새끼 돌고래의 형체가 드러났다. 65~70㎝의 길이로 미루어 출산 직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상괭이 사체에서 거의 다 자란 새끼 돌고래가 나왔다. 연구진은 어미 상괭이가 출산 직전 그물에 걸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많은 돌고래가 어업 활동을 위해 쳐 둔 그물에 걸려 다치거나 질식사하고 있다. 포유류인 돌고래는 당연하게도 아가미가 아닌 폐 호흡을 하기 때문에 일정 시간마다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돌고래들이 주로 사는 연안 바닷속에는 안강망, 자망 등 갖가지 형태의 그물망이 널려 있다. 하루 평균 40~160㎞가량을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돌고래가 바다에서 수많은 그물을 무사히 지나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선박, 레저용 보트 등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구들에 부딪혀 멍들고 피부가 찢겨 죽음을 맞이하는 돌고래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사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부검팀은 폐 상태와 기생충 검사, 조직 검사 등을 통해 이들이 질병으로 죽었는지 질식사했는지 ‘그날의 이유’를 찾아간다.

다만 이날 부검에서 임신 중이었던 상괭이는 자궁이 열려있을 정도로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그물에 걸려 익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상괭이는 사람처럼 1년가량 임신 기간을 거쳐 새끼 한 마리를 낳고 몇 달씩 젖을 물려 키운다. 이날 뱃속에서 나온 새끼는 수컷으로 온전히 자란 상태였다.

죽은 어미의 폐에는 포말이 가득했고, 새끼를 품은 이 상괭이가 얼마나 큰 공포와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의 한 아쿠아리움에 전시된 상괭이. 머리가 둥글고 등지느러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의 웃는 모습과 닮았다. 연합뉴스

8월, 한여름 제주의 바다는 푸르고 역동적이다. 해변을 거니는 연인들은 다정하고, 밤바다를 수놓는 집어등의 물결은 고된 생의 의지를 낭만적으로 드러낸다.

그 아래에서 수많은 해양생물이 수면 위의 어부들처럼 각각의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

사람들은 돌고래를 위해 서식지 보호 방안을 고민하지만 돌고래는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 위해 어부들이 쳐 둔 그물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특히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어 다른 돌고래들보다 쉽게 희생되곤 한다. 어업인들이 수면 아래 상괭이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부검 현장에 동행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바닷속에 너무나 많은 그물과 이에 따른 혼획으로 한반도 해역에서 매년 2000마리의 고래류가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찾을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푸른 바다의 이면(異面)인 셈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