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인 독재체제의 최고지도자로서 직무 수행에 피로감을 느끼는 듯한 정황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났다. 집권 9년차에 접어든 김 위원장은 7월 이후 좀 늘긴 했지만 올해 공개 활동 횟수가 평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드는 등 바깥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장기 집권에 따른 심리적 압박과 피로감도 통치 방식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평소 통치 스트레스를 폭음과 폭식, 폭연으로 달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대북제재가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다 올해 코로나19 확산과 수해까지 겹치면서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경제 발전을 강조해왔던 김 위원장으로서는 정치적,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이것만이 배경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계속돼온 권력 장악 작업에 따른 정치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권력 일부를 분산해 통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통치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한동안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면서 권력 집중에 힘을 쏟았다. 권력 장악 작업이 완전히 끝난 현재로서는 간부들에게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여도 좋겠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가장 신뢰하는 간부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6월 김 위원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아 ‘대남사업 총괄’로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공세를 총지휘해 주목을 받았다. 김 제1부부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자기 명의 담화를 통해 밝힘으로써 대미 정책에도 관여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경제 관료인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총괄해온 리병철 당 부위원장 겸 군수공업부장, 군부 통제를 담당하는 최부일 당 군정지도부장 등 고위 간부들도 비교적 폭넓은 권한을 위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것이 후계자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국가정보원은 선을 그었다. 기존에는 김 위원장이 분야별로 세부 사항을 일일이 보고 받고 결재했다면, 현재는 당 부위원장 또는 부장급 간부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전결 처리 권한을 부여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말 신설된 것으로 파악된 노동당 군정지도부는 군부에 대한 당적 통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부서로 추정된다. 기존의 군 검열·통제 부서는 북한군 총정치국과 노동당 조직지도부로 알려져 있었다. 북한은 두 기구에 분산된 권한을 합쳐 노동당 중앙당 산하 전문부서로서 새로 출범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의 권한이 축소되고 당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주민 통제 기관인 인민보안성 명칭을 사회보안성으로 바꾼 데 대해 공안통치 강화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