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하는 선비, 백제 사치품 녹색 그릇…전주·익산 ‘박캉스’ 손짓

입력 2020-08-21 06:00
공자 왈 맹자 왈∼. 양반 자세로 앉아 글 읽던 조선 시대 선비들은 좀이 쑤시던 몸의 피로를 어떻게 풀었을까.
이황이 쓴 '선조유묵활인심방'. 조선 16세기.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국립전주박물관 제공

전북 국립전주박물관의 특별전 ‘서원,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기르다’에 가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퇴계 이황이 의학서를 참고해 쓴 심신 수양서 ‘선조유묵활인심방(先祖遺墨活人心方)’에는 뭉친 근육을 풀고 기분 전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이 전시는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등 전국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1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최근 전주박물관을 다녀왔다.

코로나의 재유행 위기로 수도권 박물관·미술관이 다시 잠정 휴관했다. 지역 박물관에서 남은 여름 박캉스(박물관+바캉스)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산서원 현판.

전시는 ‘공부하고 수양하는 선비들의 사설 학교’인 서원의 모든 것을 아주 친절히 보여준다. 서원 현판을 붙인 구조물과 서원의 풍치를 담은 사진을 병치해 실제 서원에 들어서는 기분을 주는 도입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전국 서원의 현판 글씨를 한데 모아 비교 감상하는 재미도 준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을 추천했던 선비 류성룡이 사용했던 책상과 가죽신, 임금을 만날 때 손에 쥐던 홀, 중종 때 문신 이언적이 썼던 허리띠 등 선비들의 손때가 묻은 유물, 서원이 소장한 방명록도 나왔다. 이기현 학예연구사는 “ 방명록은 노론, 소론 등 당시의 당파 인맥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류성룡의 유품 . 가죽신과 대나무 유서통, 상아 홀로 구성돼 있다.

조선 시대 왕의 사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하기도 했다. 왕이 내린 서적은 ‘어책 가마’에 태워 보냈는데, 그 가마도 전시장에 나왔다. 왕은 서원이 소장한 자료에 감상문을 곁들이기도 했다. 이황이 제자에게 쓴 편지에 정조가 덧붙인 감상문이 그런 예다.
어책가마. 임금이 서원에 책을 내릴 때 이 가마에 실어 보냈다.

이런 대접을 받은 선비들은 국가 위기 시 직접 칼을 들고 나서기도 했다. 최초의 항일 의병을 일으켰던 주인공은 정읍 무성서원에서 공부했던 선비 최익현이다. 연대해 여론정치를 하기도 했다. 안동 도산서원에서 사도세자의 왕위 추존을 주장하며 만 명의 유생들이 연대 서명한 만인소의 크기는 길이 96m가 넘어 조정을 움직인 유생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천원 지폐의 도안 그림으로, 도산서당을 그린 계상정거도 등 회화, 지도, 초상화 등이 나와 밋밋할 수 있는 전시에 시각적 즐거움을 보탠다. 30일까지.
관람객이 '영남 만인소'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개관한 전북 국립익산박물관에서는 ‘녹색 유약, 녹유’전을 하고 있다. 녹유(綠油)를 주제로 하는 국내 첫 전시다. 녹유란 도기나 토기의 표면에 녹색과 청색이 나도록 바르는 일종의 녹색 광택제다. 흔히 고려청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청색 그릇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조상들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녹유를 힙힌 도기를 생산했다. 삼국 중에서는 백제가 가장 빠른 6세기부터 썼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녹유 서까래 막새 기와.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고려청자가 철을 써서 녹색을 냈다면, 녹유 그릇은 구리와 납을 이용해 녹색을 낸다. 납이 들어가면 녹는점이 낮아져 녹색 그릇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녹유는 당시에도 사치재였기에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백제의 녹유 유물이 대거 발견된 곳은 왕궁도 아닌 익산 미륵사지였다. 수십만 점의 기와와 함께 녹유를 발라 구운 1300여 점의 서까래 막새 기와가 출토된 것이다.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던 무왕이 창건했다. 송현경 학예연구사는 “출토 유물의 분량으로 봐서 미륵사의 거의 모든 건물에는 녹유 기와가 달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말했다.
나주 복암리 출토 녹유 잔과 잔받침(보물 제453호).

통일신라시대 녹유 뼈단지(국보 제125호)

나주 복암리 1호분에선 녹유 잔과 잔 받침(보물 제453호)이 나왔다. 이처럼 지방에서 출토된 녹유 유물은 지방으로 백제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내렸던 사역품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시대 녹유 뼈단지(국보 제125호) 등 녹유의 진수들이 다 모였다. 11월 22일까지. 전주·익산=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