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고유민 선수의 유족과 소송 대리인이 “현대건설 배구단의 사기극이 고유민 선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대건설 구단 측은 “선수와 구단이 합의해 계약해지를 했고, 임의탈퇴 처리 후 선수의 은퇴 의사를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고인의 어머니 권모씨와 소송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20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이들이 고유민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이 악성 댓글이라고 하지만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따돌림, 배구 선수로의 앞길을 막은 구단의 사기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대건설 구단은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입장문을 발표해 “훈련 배제 등 따돌림은 없었다”며 “임의탈퇴 후 고인은 구단과 만난 자리에서 ‘배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고유민 선수가 생전 가족, 동료와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감독이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한다’ ‘나와 제대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을 일관되게 했다”며 “의도적인 따돌림은 훈련 배제로 이어졌다. 고유민 선수는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료를 감싸다가 더 눈 밖에 나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변호인과 유족은 고유민 선수를 따돌린 ‘주범’으로 현대건설 감독과 코치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구단 자체 조사 결과 훈련이나 경기 중 감독이나 코치가 고인에 대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고유민 선수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기도 했다. 경기와 훈련에서 배제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유족과 변호인은 계약상의 문제도 제기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고유민 선수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구단에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를 미끼로 고유민 선수에게 3월 30일 선수 계약해지 합의서에 사인하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5월 1일에 일방적으로 고유민 선수를 임의 탈퇴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고유민 선수는 계속 배구 선수로 뛰고 싶어 했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계약을 해지하면 고유민은 자유계약선수(FA)다. FA는 임의탈퇴 처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임의탈퇴로 묶인 선수는 원소속구단이 이를 해지하지 않으면 한국프로배구 V리그에서 뛸 수 없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는 고유민 선수의 의지를 구단이 꺾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한국배구연맹(KOVO)에 이를 확인하니, KOVO는 ‘현대건설 배구단이 선수와의 계약해지 합의서를 연맹에 제출한 적이 없다. 그런 게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고 답했다”며 “KOVO의 답변이 사실이라면 현대건설 배구단은 KOVO를 상대로도 사기극을 벌인 것”라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은 “고인이 2019-2020 정규리그가 진행 중이던 2020년 2월 29일 아무런 의사 표명 없이 팀을 이탈했다. 선수가 인터넷 악플로 심신이 지쳐 상당 기간 구단을 떠나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며 “구단은 상호 합의 하에 3월 30일자로 계약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3월에는 임의탈퇴가 불가능한 시기여서 FA 절차 종료 이후인 5월 1일부로 임의탈퇴 공시를 했다”며 “6월 15일 고인은 ‘배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사를 확고하게 밝혔다”고 덧붙였다.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은 피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박 변호사의 주장대로 계약해지한 선수는 이미 구단을 떠난 신분이어서 임의탈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3∼6월 고유민 선수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유족과 변호인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다.
2013년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고유민은 수비력에 강점이 있는 백업 레프트로 활동했고, 지난해 4월에는 처음 FA 자격을 얻어 잔류 계약에 성공했다. 2019-2020시즌 중인 올해 초에는 리베로 김연견이 부상 이탈하자 대체 리베로로 투입되기도 했지만, 부진을 겪다 5월 임의탈퇴 처리됐다.
고유민 선수는 지난 7월 31일 광주시 오포읍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유민 선수의 어머니 권씨는 “유민이가 생전에 수면제를 복용할 만큼 힘들어했다. 구단은 팀 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조했다”며 “유민이가 어떤 심정으로 버텼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유민이를 따돌린 사람들의 죄를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