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책과 역할을 정해 중고차 사기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일당을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형법에 범죄집단이 추가된 이후 관련 법리를 최초로 설명한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일 범죄단체조직·활동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22명의 상고심에서 범죄단체조직·활동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까지 인천 지역에서 중고차 사기 등으로 수억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중고차량 매매사이트 등에 허위 매물 등을 올려 피해자를 외부사무실로 유인한 뒤, 중고차를 시세보다 비싸게 판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사기 혐의와 함께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1심과 2심은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보기 어렵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우선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은 범죄단체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정 다수인이 사기범행을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원들이 대표, 팀장, 출동조, 전화상담원 등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했다”며 “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를 갖춘 결합체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단에 대해 “형법 114조에 범죄집단이 추가된 이후 범죄집단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설명한 판결”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형법114조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을 범죄단체조직 등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유사한 혐의가 적용된 ‘박사방’ 일당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