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호텔 발코니에서 목숨을 잃은 로이터 사진기자의 사건을 통해 긴 렌즈가 로켓추진형 수류탄으로 잘못 보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3년 이라크에서 카메라를 들기 전 “뉴욕타임스” “사진기자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상대 동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카메라를 들 때조차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전장(戰場)을 사진으로 기록한 미국 여성 종군기자 린지 아다리오(47)의 에세이다. 두 번의 납치와 한 번의 큰 교통사고에도 “전 세계에 진실을 보여줄 의무”를 새기며 위험한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을 그리고 있다. 동시에 가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더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과 아이에 공감하는 여성 사진기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수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을 광각렌즈로 다양하게 담아내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망원렌즈로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생사의 갈림길
열세 살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니콘 카메라로 사진의 세계에 입문한 저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를 통해 사진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다. 이후 쿠바, 인도 등을 거쳐 2001년 9·11 테러 전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취재하면서 사진기자로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9·11 테러 이후 중동으로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면서 저자 역시 중동에서 상당 기간 경력을 쌓는다.
위험 지역을 취재하는 만큼 죽을 고비는 무시로 찾아왔다. 2004년 4월 이라크에서 미군에게 희생된 시아파 남성의 장례식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던 저자는 동행했던 남성 기자 매슈와 함께 반란군에 납치된다. 두 번째 납치는 아랍의 봄이 한창이던 2011년 3월 리비아에서였다. 동료기자 3명과 반란군을 따라 이동하다 정부군에 납치됐다. 억류 중 “너는 오늘밤 죽을거야”라는 말을 듣고 폭력이 되풀이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7일간 억류됐다가 자유를 찾았다.
2007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선 미군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총상을 입은 매복 공격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9년 5월에는 파키스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운전사가 사망하고 본인은 어깨에 티타늄 판을 박는 부상까지 입었다.
이쯤 되면 죽음의 문턱을 반복해서 마주하는 저자의 행동에 고개가 갸웃할 법도 하다. “우리 여기서 죽을 같아”라고 되뇌었던 첫 번째 납치 이후 현장에 남는 저자의 결정도 쉬이 이해가지 않는다. 저자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감정을 충분히 돌아보며 그 감정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보려 했다. 납치에 대한 나의 반응이 하나의 도피수단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내 인생의 사명이 되어버린 이 일을 단념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두려움을 내가 선택한 여정에 수반하는 부산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뜻 단단해 보이는 저자도 반복되는 죽음의 고비와 동료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에는 흔들린다. 베테랑 사진기자였던 팀 헤더링턴과 크리스 혼드로스가 저자의 두 번째 납치 한 달여 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감정이 요동친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이는 내가 리비아에서 직접 겪은 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처음으로 나는 수년간에 걸쳐 누적된 트라우마의 무게를 느꼈다.”
여성의 뷰파인더
책이 그리는 종군기자의 삶이 더욱 다채롭게 느껴진다면 이는 저자가 여성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2000년 첫 번째 아프가니스탄 취재에서 현지 여성들의 삶을 엿본 저자는 9·11 이후에도 여성들의 일상에 주목하는 사진을 찍는다. 특히 내전을 겪고 있는 수단과 콩고에서 약탈과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주목해 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강간을 당한 후 질병에 감염되고, 강제로 임신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당 여성들이 “출생지의 피해자였다”고 규정한다.
저자가 임신 이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겪었던 상황도 적잖은 울림을 준다. 2011년 임신 5개월의 몸으로 소말리아 난민을 취재하던 저자는 한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18개월된 아이를 마주한다. 아이의 엄마와 이모는 희망을 잃고 장례를 치르듯 아이의 눈을 감기고, 입을 닫아준다.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던 저자는 자신의 뱃속 아기가 발로 배를 차고 몸을 비트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사진기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삶과 죽음이 나란히 공존하던 이 순간만큼이나 지독한 부조화를 이루면서도 부당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부조리도 많았다. 9·11 테러 이후 파키스탄 취재 과정에서 군중들 사이에서 성추행을 당한 것을 비롯해 리비아에서 납치된 후에도 여러 차례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검문소에선 임신상태임에도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여러 번 전신 스캔을 받는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이슬람만의 제약도 있었는데, 납치 상황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라크에서 납치됐을 때 동료 남성 기자는 누워서 잤지만 저자는 꼿꼿이 앉아 있어야만 했다. 여성이 낯선 남성들 앞에서 눕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임신·출산 이후 경력 단절에 대한 초조함과 고민도 담겨 있다. 저자는 임신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앞으로 사진을 계속 찍을 수 있을까? 내 생각은 동료들에게도 옮겨갔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주도해왔고 지금도 대다수가 남자인 내 직업군의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나는 엄마로서의 내 삶을 상상해보려 애썼지만, 전쟁사진 분야에서 적당한 롤모델을 찾기가 어려웠다.”
위험천만한 전장과 평온한 일상을 오가는 삶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나름의 결론을 내리며 책을 마친다. “종군 사진기자이자 엄마로서, 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수많은 아이들이 뛰노는 아름다운 런던의 공원과 전쟁지역을 오가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지만,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는 평화 속에서 사는 동시에 전쟁을 목격하고, 인간의 가장 악랄한 측면을 경험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쪽을 선택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