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이틀째 일정을 치른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자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를 발표하는 ‘롤 콜(Roll Call·호명)’ 투표였다. 이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 경선 승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진행된 절차상 일정이었지만 참여한 각 주의 대의원 대표들은 바이든을 ‘다음 대통령’으로 호명하며 승리를 염원했다.
50개 주(州)를 포함해 특별행정구인 워싱턴DC와 미국령 등 총 57개 지역의 대의원 대표는 이날 알파벳 순서에 따라 화상으로 등장해 자신의 지역에서 치러진 민주당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대의원을 얼마나 확보했는지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을 호명할 땐 “우리의 다음 대통령 조 바이든”이라고 불렀다.
버몬트주 차례에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강력한 당내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부인과 함께 마스크를 쓰고 엑스트라마냥 뒤편에 서 있는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바이든의 아내 질 바이든 여사는 이날 마지막 찬조연사로 나서 청중들에게 감동을 줬다. 질은 자신이 1990년대에 영어 교사로 일했던 윌밍턴의 한 고등학교 빈 교실에서 생중계로 연설을 했다. 연설 장소로 코로나19로 텅 빈 교실을 선택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을 잃은 상실감을 나타낸 것이다.
질은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이 무겁다. 우리는 강한 어깨를 가진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남편의 아픈 가족사 극복 경험을 소개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1972년 교통사고로 아내와 13개월 된 딸을 잃은 뒤 1975년 질을 만났다.
질은 “남편 조에게 이 나라를 믿고 맡긴다면 그가 우리 가족에게 했던 일을 당신의 가족을 위해서도 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안다”며 “우리를 하나로 모으고 온전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미국에 맞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면, 질은 감성적인 연설로 왜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항마’인지를 설득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질은 텅 빈 교실에서 올해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보여줬다”며 “바이든이 망가진 가족을 온전히 만들었듯 이 나라를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도 이날 바이든 지지 연설에 동참했다. 그는 “트럼프의 백악관 집무실은 폭풍의 중심이고 혼돈만 있을 뿐”이라며 “지금 같은 시기에 대통령 집무실은 지휘센터여야 하는데 트럼프는 책임을 전가하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트럼프의 미국,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일하는 바이든의 미국이 있다. 우리의 선택은 바이든”이라고 강조했다.
생존한 전직 미국 대통령 중 최고령인 지미 카터(95)도 육성 메시지를 통해 “바이든은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할 수 있는 경험과 성격, 품위를 갖고 있다”며 바이든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 민주당은 이날 자당 소속 차세대 정치 지도자들의 기조 연설 자리도 만들었다. 한국계 신인 정치인인 샘 박(34) 조지아주 하원의원이 민주당 ‘라이징 스타’ 17인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을 끌었다. 자신을 ‘한국전쟁 난민의 손자’로 소개한 박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실정을 꼬집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