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양과목 교과서에서 ‘삼권 분립’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반정부 시위 장면도 삭제되는 등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
이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이어 교육 과정에서도 학생들에게 중국식 정체성을 심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오늘날의 홍콩과 현대 중국, 세계화 등 6개 주제로 정치 참여, 홍콩의 법체계, 시민의 정체성을 다루는 고등학교 교양 교과서가 대폭 수정돼 보급된다.
홍콩 대부분의 학교가 사용하는 6개 출판사의 교과서 8종에 대해 수정이 이뤄졌다.
새 교과서는 시민 불복종에 대한 정의를 다루는 부분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범죄 혐의를 포함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홍콩 주민은 ‘홍콩인’인 동시에 ‘중국인’이라는 점도 부각시켰고, 중국 본토의 경제 발전이 홍콩 주민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서술도 들어갔다.
기존 교과서에는 ‘나는 홍콩인이다’ ‘홍콩을 해방하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담은 삽화가 실렸지만, 새 교과서에서는 다른 삽화로 대체됐다.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시위에서 ‘홍콩 해방. 우리 시대의 혁명’ 등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된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섹션에서는 홍콩 반정부 시위대가 메시지를 적은 스티커를 붙이는 ‘레논 벽’의 사진도 삭제됐다. 중국 본토는 아직 법치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비평가의 언급도 빠졌다.
또 행정부 주도의 통치시스템을 추구하는 중국 본토와 홍콩 정부의 의도에 따라 입법·사법·행정부가 독립성을 갖는다는 ‘삼권 분립’이란 용어도 새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교양 과목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를 높이고, 현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2009년부터 고등학교 주요 과목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친중 인사들은 일부 교재가 편향돼 있고, 젊은이들에게 급진적인 사고를 심어주며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도록 부추긴다고 비난하면서 수정을 요구해왔다.
홍콩의 진보 진영은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교과서 수정으로 교사들이 학생들과 논쟁적인 주제를 토론하는 게 어렵게 됐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친중 진영은 “기존 교과서는 일부 편향된 내용이 있었는데 내용 수정으로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한편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이 정부 정책이나 결정에 대항해 불법적인 공공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에 대해 해고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침을 하달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람 장관은 또 공무원을 신규 채용할 때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등에 올렸던 내용 등을 조사해 부정적인 언행이나 성향이 포착되면 임용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