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도 “누구든 권리 있다” 한 보석… 전광훈이 망쳤다

입력 2020-08-19 16:36


조건부 석방됐던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담임목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원흉으로 지목되자 법조계는 보석 제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보석 제도는 그간 여론과 법리의 첨예한 충돌 지점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무죄추정과 인권보호 방안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 죗값을 치른다”는 비난으로 통했다.

법조계는 한국 사법체계에서 보석이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 왔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중시하는 흐름,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보석률이 이 같은 인식을 낳았다. 법조계의 뿌리깊은 폐단인 전관예우와 연결되는 현실은 큰 과제였다. 많은 국민이 전 목사의 재수감을 촉구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석 허가 기준이 명확해지고 사후관리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 목사의 보석 취소를 예상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19일 “전 목사로 인해 보석 제도가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다”며 “사법부 불신 여론도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재차 고개를 들자 많은 이들은 지난 4월 법원의 전 목사 보석 결정도 탓하고 있다. “전 목사가 보석으로 풀려난 후 방역 당국의 노력마저 헛되게 만들었다”는 내용의 재수감 국민청원에는 3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그간 변호사업계는 물론 법원·법무부도 보석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태도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2011년 당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보석을 탄원한 일이 국회에서 공개되자 “피고인의 방어권은 필요하다” “재벌이건 누구건 보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법원에서 보석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법제사법위원의 말에 “견해를 같이 한다”고 답했다. 그는 “법원에서 종전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치유적 사법에 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다”고 했다.

구속 피고인의 보석 석방 사례는 흔치 않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6만110건인 전체 구속 사건 가운데 보석이 허가된 사건은 2167건(3.6%)이었다. 유럽이나 영미권에서는 이 보석률이 30%대라고 법조계는 설명한다. 낮은 보석률은 구속영장 발부 단계에서부터 법원이 엄격한 판단을 취한 결과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너무 예외적인 일이다 보니 전관예우 부작용을 초래했다.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을 촉발한 것도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정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보석을 대가로 50억원을 받기로 한 약속이었다.

법조계에서는 전 목사 사태를 계기로 보석 제도의 개선 방안을 고민할 때라는 말이 나온다. 병보석 등은 기준을 명확화해 형평성 논란을 벗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벌가 회장이 해외에서 치료받고 회복한 것과 매년 교도소에서 25명가량이 병보석 허가를 못 얻어 사망하는 것이 과연 평등하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법원과 함께 협의해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답했었다.

석방 조건을 지키지 않은 피고인은 보석 취소 조치를 넘어 외국 입법례처럼 별개 범죄로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석 조건을 위반한 피고인에 대해 미국은 법정모독죄로 처벌하게 하고, 영국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게 한다. 도진기 변호사는 전 목사 사례에 대해 “이렇게 대담하게 위반한 경우는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원 구승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