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독서] 신복룡 역주 ‘한말 외국인 기록’(12): “재판합시다!”

입력 2020-08-19 09:07 수정 2020-08-22 10:02
법정은 백성이 법률상의 어려움을 당해 그들의 법익을 구제하기에 상당한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을 만큼 백성의 다정한 벗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흔히 “재판합시다”하는 말을 잘한다. 이러한 어투는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서 기분에 따라 하는 말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이 다투는 문제가 소송을 일으킬 만큼 중대한 것이란 열에 하나도 드물 뿐만 아니라 설령 소송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게 판결이 나는 경우는 둘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1907년 전라도 고부군수에게 고부 성포면 고을민 김기영이 올린 채송(債訟) 소장.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그들이 권리 구제를 위해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가해자를 비난해 돈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소송과 같은 방법을 취하기에 앞서 가해 사실을 분명히 밝혀 둠으로써 그와 같은 모험이 실제로 성공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옳지 못한 방법은 급기야 공갈 취득이라고 하는 비행을 저지르게 한다. 그러한 부정한 방법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의 도덕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그러한 방법은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대체로 그 피해 대상은 하층 계급이다.

이러한 일은 너무도 흔히 있어 하층 계급 사람들은 늘 걱정을 하고 있으며, 거짓말을 꾸며 재산을 빼앗아 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뜯기는데 이는 마치 시골의 도둑 떼들이 갑자기 습격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정기적으로 금품을 거두어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집문당 刊 ‘대한제국멸망사’ 제 3장 정치제도:80~81쪽)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