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코로나19에 신음하는 가운데 올여름 곳곳에서 ‘최악의 폭염’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화재와 홍수가 계속되고, 바이러스 확산으로 보건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식량과 전력 공급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 국립과학아카데미(NAS)는 오는 2100년이 되면 미국의 도시들이 2000년대 초반 대비 최대 30배가 넘는 극한의 열기에 노출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17일(현지시간) 공개했다.
NAS 저널에 실린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지난 20년동안 해왔던 대로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하지 않은 채 기온이 상승할 경우를 가정한 결과”라면서 “지구 온난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하고, 상승한 기온에 적응하는 일 두 가지가 이번 세기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선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상고온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기온은 이날 섭씨 54.4도로 지구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CNN방송 등이 전했다.
데스밸리 국립공원 직원인 브랜디 스튜어트는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강력한 열이 느껴져 이달 들어 대부분 실내에 머무르고 있다”면서 “여러 대의 헤어드라이어가 동시에 얼굴로 열기를 내뿜는 느낌, 오븐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묘사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선 최근 ‘파이어 토네이도’도 수 차례 목격됐다. 파이어 토네이도는 지표면의 열기와 불꽃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가 불기둥을 이루는 현상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전력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해 이날 폭염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미 서부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주말 폭염으로 인한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유럽에서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주 런던 도심의 기온이 6일 연속 섭씨 34도를 웃돌았다면서 “196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런던은 이달 초 사상 최고 기온인 38도를 찍었다. 스페인 북부에서도 처음으로 섭씨 42도의 기온이 측정됐고, 남부 지역은 45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가뭄은 농작물 재배 등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유럽은 2018년부터 기록적인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기상청은 “지난달 프랑스의 강우량이 1959년 이후 61년만에 최소치를 기록한 반면 지난 1~7월 평균 기온은 관측 시작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헴홀츠환경연구센터 보고서를 인용해 “온난화 가스 배출 상황이 최악 수준일 경우를 가정했을 때 올 하반기 유럽의 가뭄 피해는 지난 20년간 유럽이 입었던 가뭄 피해의 7배 가량인 7000억 유로(약 987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미국기상학회(AMS) 회장이자 기후과학자인 조지아대 마셜 셰퍼트 박사는 “사람들은 극단 상황에서야 변화를 알아차린다”면서 “건강에서부터 우리가 먹는 음식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사상 최고 수준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열사병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정오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의 기온은 41.1도까지 치솟았다. 일본에서 올여름 40도 이상의 폭염이 관측된 것은 이날로 3번째다. NHK는 도쿄도에서 이달 들어 17일까지 79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도 18일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최근 낮 최고 기온이 31~38도를 기록하고 열대야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성과 지속성, 빈도 등의 측면에서 전세계의 열파(heat wave)는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면서 “지난해 연구에서 지구가 이례적인 열파를 동반하는 ‘새로운 기후체제(new climate regime)’에 접어들었다는 점이 알려졌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