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도 객석 거리둬라” 정부 명령에 공연계 패닉

입력 2020-08-18 16:50 수정 2020-08-18 16:55
거리두기 좌석제를 준비하는 마포문화재단의 모습. 연합

“그동안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관객까지 공연장 정상화를 꿈꾸면서 방역 수칙 철저하게 지켜왔잖아요. 그 덕에 지금까지 확진자 한 명 없이 무대 잘 올려왔는데 당장 좌석 거리두기를 하라니까 막막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연장 방역 조치 강화 공문이 내려온 16일부터 공연계에서 잇따라 한숨이 터져 나왔다. 특히 국공립 극장만 시행하던 좌석 거리두기를 민간 공연장에도 의무 적용하라는 방침이 문제였다. 문체부는 “공연장 좌석 한 칸 띄어 앉기 등 핵심 방역수칙 준수의무는 국공립뿐 아니라 민간에도 적용된다. 어기면 집합 금지 행정조치와 벌금 300만원을 부과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알렸다. 서울·경기 지역에 있는 공연장이 대상이고 별도로 해제를 명령해야 정상화된다.

문체부의 공문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도로 불어나 보건복지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하면서 나왔다. 정부의 엄격한 기준을 준수하던 국공립 극장까지 최근 기지개를 켜던 상황에서 이번 조치로 공연계는 다시 비상이 걸렸다. 연휴가 끝난 18일부터 긴급 논의에 돌입하고 문체부 관계자와 만나 방역수칙 조율에 매진하고 있다.

당장 21일 개막이 예정된 뮤지컬 ‘킹키부츠’의 제작사 CJ ENM 관계자는 “갑자기 공문을 받아 급하게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며 “다른 제작사들과 소통하며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제이미’의 제작사 쇼노트 관계자는 “좌석 거리두기를 실시하면 티켓 절반만 판매하라는 말인데 사석 등을 감안하면 40% 정도밖에 팔 수 없다”며 “사실상 공연을 할 수가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공문대로 라면 16일부터 좌석 거리두기를 실시해야 했지만 연휴 기간에다가 현실적으로 당장 모든 예매를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해 선제 조치로 환불을 진행한다. 23일 나란히 막을 내리는 뮤지컬 ‘모차르트!’ ‘렌트’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포함해 대다수 공연이 일정대로 무대를 올리되 예매 취소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 확진 여파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리던 뮤지컬 ‘머더 발라드’는 23일까지 공연을 잠정 중단한다. 서울시향의 연습동과 공연장의 위치가 가깝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밀접 접촉 대상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연 관계자는 “진행 중인 공연 좌석을 갑자기 띄울 수도 없고, 공연을 무작정 중단할 수도 없지 않나”라며 “수수료 없이 환불하는 것도 피해가 막대한데 좌석 거리두기를 시행하려면 모든 티켓을 취소하고 재예매하도록 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전석 매진을 기록해도 오히려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지금까지 민간에는 좌석 거리두기를 강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국공립 공연이 멈춘 상황에서도 민간은 계속 무대를 올리고 있었다. 민간은 수익과 직결된 좌석 거리두기를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K방역을 토대로 안전한 공연장을 유지했다. 마스크를 쓰고 침묵한 상태로 무대를 바라보는 환경 특성상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낮아 지금까지 극장 내 감염은 한 차례도 없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는 밀접 접촉 가능성, 비말 감염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뮤지컬, 연극 등을 올리는 실내 공연장은 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판단했었다.

현재 대형 공연장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최소 관객석 70%를 채워야 한다. 평소에도 시야 제한석은 판매가 부진한 점을 고려하면 좌석 거리두기를 실시할 경우 관객을 절반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관객 수를 제한하는 조치는 향후 공연 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공연 산업의 중심인 영국도 좌석 거리두기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하원의원 158명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좌석 거리두기는 공연 시장을 파산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좌석 거리두기가 공연장 안전을 위한 최후의 해결책인지 모르겠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전례없이 빨라 시민의 안전을 위해 방역수칙 강화지침을 최대한 수용해야 하는 건 맞지만 좌석 거리두기가 아니라도 철저한 방역을 토대로 안전한 공연장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강경루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