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서 놀아라’ 거리두기 완화 메시지 섣불렀나

입력 2020-08-17 17:54 수정 2020-08-17 18:28
국민일보 DB

수도권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면서 방역보다는 경제 활성화에 무게를 뒀던 정부의 정책이 다소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소비할인권을 배포하는 등 외부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이 되레 국민들의 혼란을 키워 방역망에 구멍을 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천지 사태’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도권 집단감염은 다수의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감염고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주요 감염원으로 꼽히는 교회 신도들이 다단계업체나 소규모 친목활동과 관련이 깊고 대부분 고령자라는 점도 우려스럽다.

정부는 지난 16일 오전 0시부터 서울과 경기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시행된 지 102일 만의 조치다.

정부는 5월부터 시행한 생활 속 거리두기(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부터 2단계에 이르기까지 방역과 일상이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다중밀집시설에서 QR코드(격자무늬 코드) 의무 도입, 방문기록 작성, 온라인 예약제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문화·체육·관광시설의 운영을 재개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막혀 있던 경제 활동에 숨통을 트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일상으로의 복귀가 확대될수록 방역 위기감도 덩달아 고조됐다.

정부는 급기야 지난 12일 부처별 소비 진작 패키지까지 내놓았다. 여가시설을 이용하면 할인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미 이날 기준 수도권에서 사흘 동안 총 150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쏟아지는 등 위험이 감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 활성화 쪽으로 정책 기수를 과감히 틀었다. 결국 나흘 뒤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자 부랴부랴 정책을 중단시켰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방역 당국과 외부활동을 장려하는 각 정부 부처별 목소리가 모순돼 보일 정도로 달랐다”며 “애매모호한 방역 정책은 결국 ‘국민들이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태도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완화 후 재확산’이라는 공식은 세계적 추세다. 확진자 관리를 비교적 잘해오던 뉴질랜드도 사회·경제적 활동을 늘리는 과정에서 재유행을 겪었다. 홍원수 한국방역협회 회장은 “일본도 방역 고삐를 느슨하게 풀었다가 코로나가 다시 번졌다”며 “바이러스가 완전 박멸되기 전까지는 초기에 대응했던 것처럼 적극적인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것은 이번 수도권발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1차 유행이 일었던 대구는 인구가 240만명에 불과한데 비해 수도권은 그 10배에 달하는 2400만명이 모여 있다. 그만큼 확산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김우주 교수는 “대구는 신천지라고 하는 단일집단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에 방역 대상이 명확했다”며 “그러나 수도권에서는 교회, 카페, 농촌마을, 학교까지 다발적으로 감염이 진행되는 바람에 가속도가 붙어 방역이 훨씬 어렵다”고 경고했다.

최근 확진자들이 60~70대 고령층인 점도 우려를 키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고령층이 감염되면 중환자와 사망자가 비율이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경증 환자와 중환자를 구분하는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 병상 수급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강보현 정우진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