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전임 교수가 ‘여혐 논란’에 휩싸인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36)를 향해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혐오’를 몸소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기안84가 사과문을 발표한 지난 13일 윤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두 건의 글이 17일 온라인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젊은 몸을 자원삼아 손쉽게 살아가는 ‘김치녀’와 ‘보슬아치’에 대한 망상·환상에 기초해 웹툰을 생산해내는 기안84의 세계관은 2010년대 초,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베가 탄생하던 그 시점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고 지적했다.
윤김 교수는 “20살 넘게 차이 나는 남자 상사와의 성관계로 무능력한 여성이 취업에 단박에 성공했다는 스토리야말로 현재 이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한 조롱이자 직접적 공격이며 여성혐오의 집약적 코드”라고 꼬집었다.
이어 “일베가 탄생했던 2010년대 초에는 기안84의 감성이 통했는지 몰라도 지금 여기는 2020년,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시대정신으로 체화하여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새로운 시점”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빛바랜 여성혐오 코드를 재미와 유머로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던 지난 시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이여, 그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글에서 윤김 교수는 “아무리 고스펙 여성도 채용 단계에서부터 면접 점수 조작으로 인해 각종 공기업과 금융업계에서 고용 성차별을 당하고 있음이 뉴스에서 여러 차례 밝혀져도 기안84의 세계관은 김치녀 망상을 내려놓질 못한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 웹툰이 악의적인 것은 고용 성차별, 임금 성차별의 문제는 물론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의 엄혹한 현실을 자신의 몸과 젊음을 앞세워온 여성이 모두 다 만들어낸 것이라는 책임전가에 있으며 구조적 불평등의 현실은폐에 있다”고 덧붙였다.
기안84는 지난 11일 공개한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광어인간 1~2화’에서 스펙이 부족한 여성 인턴사원 봉지은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 남성 상사에게 성상납을 한 것처럼 묘사해 논란이 됐다. 또 회식 자리에서 여성 인턴이 기다란 물체로 배 위에 올려둔 ‘조개’를 깨부수는 설정으로 여성 혐오 및 비하 지적까지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기안84는 지난 13일 대사와 그림 일부를 수정하면서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했다”는 황당한 해명으로 추가 논란을 야기했다.
기안84의 웹툰 연재를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11일 게재돼 5일 만에 10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그가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MBC) 시청자 게시판에는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