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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완판됐다”
그야말로 대란이었다. 스타벅스 레디백을 손에 넣기 위해 올여름 많은 사람이 밤잠을 설치거나 이른 아침부터 집밖에 나섰다. 헛걸음도 상당했다. 화려한 인기만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스타벅스는 여름 이벤트를 두 달가량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초반부터 커진 화제 때문에 ‘없어서 못 주는’ 상황이 연출됐다. 상품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높은 가격으로 등장했고, 굿즈를 얻기 위해 음료 680잔을 주문한 뒤 가방만 챙겨 간 고객을 봤다는 목격담까지 등장했다. 이후에도 스타벅스 긴 우산과 한정판 텀블러 세트가 품절 대란을 이어갔다.
이런 현상에 동참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바라보는 이들도 다수였다. 스타벅스에 진심인 사람들은 왜 그토록 정성일까. 손에 넣은 상품들을 보면서 어떤 가치를 느끼고 있을까. 스타벅스 굿즈를 모아본 경험이 있는 20대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비행기까지 탈 뻔했어요”
대학생 A씨(21·여)에게 스타벅스 굿즈가 어느 정도 매력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비행기 표까지 알아보려다 참았다”며 “예전에 제주도에서만 판매하는 굿즈가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제주에 가고 싶었다. 굿즈를 위해 여행을 계획할 뻔했다”고 답했다. 이어 “봄마다 출시되는 한정 상품을 생각하면 매년 봄이 기다려질 정도”라고 덧붙였다.
공들여 상품을 모으는 게 돈 낭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A씨 의견은 다르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사면 음료 교환권을 준다. 음료 한 잔 가격을 고려하면 굿즈가 많이 비싼 편은 아니다. 오히려 한 번의 소비로 내가 좋아하는 굿즈와 음료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일석이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스타벅스 마케팅에 넘어가는 고객이 아니라 현명하게 돈을 쓰는 소비자로 정의하고 있다.
A씨는 이미 많은 이벤트 상품을 갖고 있지만 새 상품을 더 모을 계획이다. “모으면 모을수록 새롭고 즐거워지는 게 굿즈의 묘미”라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중시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취미는 없다”고 말했다. A씨 말에 따르면 굿즈를 모으는 취미는 상당수 20대 사이에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이제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B씨(24·여) 역시 굿즈 수집이 요즘 문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스타그램 인증은 필수다. 힘들게 얻은 굿즈 사진을 올리면 친구들이 부러워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더 뿌듯하다. 과시가 아니라 이게 지금의 트렌드”라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굿즈를 모으는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묻자 “한정 수량만 출시하니까 희소성이 커 보인다. 그런 매력에 손이 가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고 계절마다 특색을 강조하는 디자인 등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과 다르게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20대에게 희소 마케팅이 잘 통하는 이유다.
“새벽 오픈런이요? 기본이죠”
자칭 ‘스덕(스타벅스 덕후)’ C씨(23·남)는 오픈런을 기본으로 해봤다고 했다. 스타벅스 관련 정보가 오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그는 “커뮤니티 사람들이 공유해둔 정보를 찾아보면서 굿즈 구매 계획을 미리 세운다. 소유욕을 자극하는 굿즈는 오픈 3∼4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라도 구매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자주 찾는 스타벅스 매장의 오픈 시간은 오전 8시다.
C씨는 굿즈를 모으는 취미가 비용 대비 만족감이 높다고 생각한다. “굿즈 수집의 장점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지갑에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라서 계속 사게 된다”며 “게다가 오픈런 구매에 성공하면 엄청난 만족감과 성취감도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싸면 1만원대, 비싸면 4만원대 물건을 사면서 이 정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가격 대비 효용이 매우 뛰어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념품처럼 모으고 있어요”
여행을 즐기는 D씨(26·남)는 스타벅스 상품 중 시티컵(city cup)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예쁘다고 생각해서 여러 제품을 샀다. 요즘은 일부 도시에서 판매되는 ‘유 아 히어 콜렉션(You are here collection)’ 상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콜렉션 굿즈에는 어떤 지역이나 나라의 대표적인 뭔가가 그려져 있고 도시 이름도 쓰여 있다. 여행 갈 때마다 기념할 겸 사고 있는데 나름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20대들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나. 그래서 컵이나 텀블러를 살 때도 실용적이기만 한 것보다는 브랜드나 디자인이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제품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제가 즐거우면 됐잖아요”
돈과 시간을 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굿즈를 모으는 이들에게 “쓰지도 않을 물건을 왜 자꾸 사들이느냐”고 핀잔을 던질 필요가 없는 이유다. 20대 응답자들은 스타벅스 굿즈를 모으면서 즐거움과 개성을 찾고 있다. 이들은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스타벅스 상품을 고르고 살 때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모은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마케팅과 유행에 휘둘리는 ‘호갱(어수룩해 이용당하는 고객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알고 좇는 소비자다. 스타벅스 굿즈들이 연이어 품절 대란을 일으킨 현상 속에는 만족과 성취를 느끼고 싶은 젊은이들의 소박한 욕구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지원 양재영 박서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