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기울어진 운동장일까요 필요악일까요? 금융 당국이 예고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오는 9월 중순에 종료되는 상황에서 금지 기간이 더 연장될 지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남기는 거래입니다.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벌 수 있어 추가 상승을 제한하고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았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주식시장이 빠르게 반등하면서 ‘애프터 공매도 금지’(공매도 금지 이후)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과 증시 활성화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공매도 금지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대권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까지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상황입니다. 공매도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난리일까요. 공매도 제도의 순기능과 악기능은 무엇이고, 보완해야 할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공매도, 필요악? 필요없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학계과 업계는 물론 개인 투자자까지 각 분야별 다양한 패널들이 모인 가운데 ‘공매도의 시장영향 및 바람직한 규제방향’이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공매도 재개 한 달을 앞둔 상황에서 개최된 공개 행사였습니다. 찬성 측 토론자로 참석한 고은아 크레딧스위스증권 상무는 “이렇게까지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인지 몰랐다”며 “큰 부담감을 안고 참여했다”고 운을 뗐습니다. 공매도 제도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다는 점을 방증하는 발언이었습니다.
먼저 이동엽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의 ‘공매도 강연’으로 포문이 열렸습니다. 이 교수는 “공매도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자산’을 빌려와 사 들이고, 추후 매도하는 거래”라며 “자산의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거래에 뛰어들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공매도는 크게 차입(借入)과 무차입으로 나뉘는데, 주식을 빌려 매도하면 차입공매도,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하면 무차입공매도가 됩니다.
공매도에 개인 투자자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교수는 “가격 하락이 가속화되고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증시가 출렁일 때 투기적 공매도가 집중되면 주가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불평등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개인 투자자가 공매도 방식으로 개별 종목의 하락세에 투자할 수 있는 건 대주거래(증권사에서 특정 주식을 빌려서 팔고 추후 상환하는 거래) 정도인데, 거래 가능한 주식도 적고 수수료가 너무 높아 실질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교수는 “결과적으로 공매도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공매도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로 꼽히는 건 미국 대표 기업들입니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미국에너지기업 엔론은 대표적 공매도 성공 사례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공매도 전문가 짐 채노스는 엔론의 회계장부가 조작됐을 가능성에 베팅해 2000년 11월부터 엔론 주식 공매도에 나섰습니다. 엔론은 그 후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채노스는 5억 달러(약 6000억원)의 이익을 거뒀습니다.
반대로 글로벌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경우 공매도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테슬라의 기업 가치에 거품이 꼈다고 생각한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나섰지만 이를 비웃듯 테슬라 주가는 고공 행진을 기록했고, 공매도 투자자들의 손실은 올 상반기에만 180억 달러(약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왜 개미들은 ‘공매도 폐지’ 외치는가
이날 토론회에선 ‘여론은 ‘공매도 폐지’ 목소리가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공매도반대 입장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함께 공매도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를 진행한 결과, ‘공매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3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금지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응답이 25.6%, ‘공매도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은 15.7%였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요국은 10년 전보다 주가는 두 배, 다섯 배 올랐는데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 후 겨우 상승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공매도는 현대판 시지프스 신화”라고 토로했습니다. “올라가면 떨어뜨리고, 또 올라가면 떨어뜨리고… 이렇게 13년째 무한반복하면서 ‘박스피’(박스권+코스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벌고 잃었습니까. (공매도가 가능한) 외국인과 기관은 축구 경기에서 양손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수 국민에게 일방적 피해를 주는 제도는 존치 이유가 없습니다.”
경제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경제의 신과 함께’ 진행자인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도 “공매도 논의를 투자자들의 탐욕으로 몰아가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공매도 폐지나 금지기간 연장 등의 요구를 투자자들의 이기적 탐욕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겁니다. 김 소장은 “공매도 제도의 순기능을 투자자들이 모르겠느냐”며 “공매도 시장 접근성에 대한 공평, 공정함이 가장 중요한 논의의 구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매도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 공매도가 주가 거래 변동성에 미치는 효과를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라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짚었습니다. “올해 코로나19로 재난지원금 50조원이 풀렸죠. 이것이 거시 경제에 어떤 영향 미쳤는지, 가계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지만 명확한 규명은 어렵습니다. 모든 인과관계와 거래 데이터를 따져볼 수 없기 때문이죠. 공매도 역시 금지했을 때 주가를 올리는지, 안정시키는 지 실증적 규명이 어렵습니다.”
공매도 논란은 사실 최근에 벌어진 현상은 아닙니다. 증시가 계속해서 박스권에 머물고, 수년 전 외국계 증권사의 무차입 공매도 거래가 문제가 되면서 꾸준히 공매도 폐지 여론이 불거졌습니다. 다만 항상 찬반 논란 끝에 도돌이표처럼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죠.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매도 토론회를 나가기 시작한 게 7, 8년 정도 됐는데, 항상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매도의 본기능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의 문제, 특히 개인 투자자 접근이 문제”라며 “불법 무차입 공매도와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가 있다면 엄벌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뜨거운 감자’ 공매도의 운명은
토론회는 결국 공매도의 찬반 주장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수준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이제 공은 금융 당국으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금융 당국은 다음달 8일 한국증권학회 주최로 열리는 ‘공매도 제도 개선 공청회’를 거쳐 개인 투자자 접근성 개선안 등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관심이 뜨거운 공매도 재개 여부에 대해선 ‘금지 연장’과 ‘단계적 재개’, ‘거래 전면 재개’ 등 3가지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공매도 금지 연장 안에 무게가 실리지만 아직 확정된 건 없다는 게 당국 입장입니다.
국내 증시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을 받아온 공매도 제도는 과연 어떻게 개선해야 바람직할까요. 현재까지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개인 투자자들의 불평등 완화와 불법 공매도 감독·처벌 강화, 공매도 투명성 확대 등입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상승에 투자하는 투자자들과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승과 하락 투자자들 모두 공평한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금융 당국은 이 같은 논란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도출할 수 있을까요. 코스피 지수를 2400선까지 끌어올린 ‘동학개미’들의 시선이 공매도에 쏠리고 있는 이유입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