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칼럼니스트 위근우가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기안84의 사과문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위근우는 13일 인스타그램에 “간만에 또 사과문 첨삭”이라며 기안84가 올린 사과문 전문을 게시했다. 그는 이 사과문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수정한 뒤, 그렇게 고친 이유를 밝히며 기안84를 비판했다.
위근우는 먼저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의 첫 문장에 주목했다. 그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담은 묘사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고쳐야 한다며 “본인 잘못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심려’는 걱정이다. 사람들은 화가 난거지 걱정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또, 사과문 중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렸다’는 문장에 대해서는 “풍자는 약자가 아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하는 강자를 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능력 대신 성적 매력으로 편하게 일자리를 얻는다는 여성혐오적인 통념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말했다.
위근우는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어필한다는 그 구상부터가 여성혐오”라며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온다며 두 달 휴재하고 시작한 에피소드에서 이런 것 아니냐. 사실 이 에피소드는 삭제하거나 새로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왜 몇 번이고 비판을 받았는데 그대로일까. 원고를 좀 더 고민해서 그린다고 될 문제일까”라며 “그보다는 본인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닌지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게 먼저일 것”이라고 했다.
위근우는 기안84의 사과문이 공개되기 전에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기안84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읽는 이들의 경우 안희정 사태를 보면서도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아닌 권력자와의 불륜으로 이해한다”며 “기안84가 악의적으로 여성 혐오를 조장한 게 아니더라도 의도를 헤아려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기안84는 지난 11일 공개된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304화에 기안그룹 인턴인 봉지은이 회식 도중 배 위에 조개를 올려 깨부수는 장면을 넣었다. 이후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벌이나 스펙, 노력 같은 레벨의 것이 아닌…그녀의 세포 자체가 업무를 원하고 있었다’는 문구가 등장했다. 봉지은은 결국 기안그룹 정직원으로 채용됐고 40대 남성 팀장과 교제를 시작했다. 일부 네티즌은 이를 두고 봉지은이 남성 상사와 성관계를 맺은 대가로 정직원이 됐다는 설정이라며 여성혐오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위근우 SNS 글 전문
간만에 또 사과문 첨삭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 이번에도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담은 묘사로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본인 잘못은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 그리고 '심려'는 걱정임. 사람들은 빡친 거지 걱정하는 게 아님)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남자 상사의 호감을 얻어 정직원이 된다는 지난 회차의 설정은 여성이 능력 대신 성적 매력으로 편하게 일자리를 얻는다는 여성혐오적인 통념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만약 개그만화로서 사회 풍자를 한다면 그런 약자로서의 여성 신입사원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남자 상사를 비꼬았어야 했는데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풍자는 말이죠, 약자가 아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하는 강자를 향해야 함)
특히 수달이 ~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봉지은의 귀여움을 수달로 비유하는 과정에서 조개를 깨는 모습을 그렸던 것이지만, 조개든 대게든 여성이 귀여움으로 남성 상사에게 어필한다는 묘사 자체가 현재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여성 직장인들에 대한 모욕이었음을 뼈아프게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처음부터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어필한다는 그 구상부터가 여성혐오라고요)
또 캐릭터가 귀여움이나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내용도 ~ 추가수정하였습니다.
- 가장 문제가 되는 장면들에 대해 급히 대사 수정 및 추가 작업을 했지만, 처음 접근부터 잘못되었기에 해당 '광어인간' 에피소드는 삭제 후 새 에피소드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에피소드에 대한 유료 구매에 대해서는 환불 조치 하겠습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온다며 2달 휴재하고 시작한 에피에서 이런 거잖아요. 사실 2회가 문제 돼서 그렇지 '광어인간' 1화도 젊은 여성에 대한 편견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니 사실 이 에피는 그냥 날리거나 아예 새로 그리는 게 맞다고 봐요)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지금껏 몇 번이나 여성비하, 장애인 비하에 대한 지적을 받았으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단순히 작품의 창작이 아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 깨닫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 작품을 보고 불쾌하셨던 분들, 그리고 제 작품 속 묘사를 통해 본인의 삶을 모욕당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왜 몇 번이고 비판을 받았는데 그대로일까요. 그게 원고를 좀 더 고민해서 그린다고 될 문제일까요. 그보단 본인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닌지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야 앞으로 안 그런다는 다짐을 0.1%라도 신뢰할 수 있죠)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