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과 제주도에서 역대 최장 장마 기록을 경신한 올해 여름, 또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태풍 없는 7월’이 현실화된 것이다.
14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발생한 태풍은 모두 6개다. 이중 8월 초의 5호 태풍 ‘장미’만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
눈여겨볼만한 것은 7월이다. 지난달에는 아예 단 한 개의 태풍도 발생하지 않았다. 7월에 태풍이 생성되지 않은 것은 관측이 시작된 195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평년 7월에는 3.6개의 태풍이 생겨나고 그 중 0.9개꼴로 한국에 영향을 준다.
기상청은 평소보다 남서쪽으로 확장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무풍 7월’의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태풍이 자주 생기는 필리핀 동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29도 이상으로 충분히 높았으나, 위에서 강하게 누르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열대저기압인 태풍이 생겨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평양 고기압 부근에 강한 동풍이 형성됨에 따라 남반구에서 모여들어야 하는 기류가 방해를 받은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일주 제주대 교수는 “2년 전과 정반대의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며 “당시엔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북쪽으로 형성돼 역대급 폭염과 태풍을 유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8년에는 6월~8월 총 18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남은 기간에도 태풍의 여파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말한다. 애시당초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히는 태풍은 대부분 가을철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을 태풍이 우리나라에 더 큰 위협인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 태풍의 성장에 유리하다. 태양이 적도 부근을 비춤에 따라 한반도의 온도는 내려가지만 태풍 요람이 위치한 저위도 바닷물은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북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며 전선을 형성한다는 점도 가을 태풍의 특징이다. 김해동 계명대 교수는 “태풍은 원래 전선이 없지만 가을 태풍에는 전선이 있다”며 “찬 공기는 아래로, 따뜻한 공기는 위로 이동하려는 성질 때문에 큰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태풍의 이동경로 역시 가을 태풍을 더욱 경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태풍은 세력이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뚫지 못하고 경계선을 따라 이동하기에 한반도가 고기압 가장자리에 놓이는 가을철엔 일종의 ‘태풍 길’이 우리나라 상공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들어 태풍 발생은 평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8월 들어서만 14일까지 모두 4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문 교수는 “8월말~9월초 강한 태풍이 발생할 수 있고 그중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때 우려됐던 장마 이후의 고온현상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강한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당분간 평년보다 조금 더운 수준의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올해 장마가 예상을 훌쩍 넘겨 늦게 끝난 만큼 무더위의 지속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