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여중생 구한 날, 아들은 슈퍼맨을 그렸습니다 [인터뷰]

입력 2020-08-16 07:10 수정 2020-08-18 09:27
전남지방경찰청 표창을 수여받은 해군 제3함대 임경진 상사(왼쪽 사진)과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량 사진. 3함대 제공, 뉴시스

“아들이 저보고 슈퍼맨이랍니다.”

해군 임경진(44) 상사는 지난달 18일 오후 전남 영산강에 투신한 여중생을 구했다. 전남 영암군 삼호대교를 운전해서 통과하던 그는 난간 위에 신발을 벗은 채 앉아있는 소녀를 발견하고는 급히 차를 돌렸다. 이어 아들에게 선물하려고 산 구명조끼를 입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임 상사 아내와 함께 현장에 있던 8세 아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여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임 상사가 물 밖에서 피를 흘리자 “아빠 피나요”라며 울었다. 상황이 정리된 후 아들은 집에 붙은 화이트보드에 “우리 아빠가 아이를 구했다”며 아빠를 슈퍼맨으로 그려뒀다. 임 상사는 슬하에 딸 하나와 두 아들을 둔 아버지다.

임경진 상사의 8세 아들이 그린 그림. 임 상사 제공

선행이 알려지자 전남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4일 표창을 수여했다. LG복지재단도 6일 임 상사를 ‘LG 의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LG 의인상에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보답하자는 고(故) 구본무 회장의 뜻이 담겼다. 최근에는 바다에 고립된 다이버를 구조하다 순직한 고(故) 정호종 경장이 이 상을 받았다.

임 상사는 14일 오전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상황과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내가) 의인이라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이런 상황이 닥치면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의 선행을 겸손하게 표현했다.

임경진 해군 상사

다음은 임 상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부대에서 업무를 보고 아내, 막내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전남 목포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영산강 하구 삼호대교를 지나다가 난간에 한 사람이 신발을 벗고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내에게 119 신고를 해달라고 말하고 차를 유턴했다. 30∼40m 정도 앞에서 학생이 강물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비탈길로 내려갔더니 학생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조금 뒤에는 배영을 하는 것처럼 하늘을 보고 누운 모습이었다.”

- 학생을 구하기까지 과정은

“아내에게 난간 주변에 구명보라든지 밧줄로 쓸 만한 것이 있을 테니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사실 그날 아들에게 주려고 구명조끼를 샀었는데 아내가 그걸 생각해내서 밑으로 던져줬다. 구명조끼를 받아 입고 물에 들어갔다. 학생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눈을 뜨고 있더라. 괜찮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여중생을 데리고 헤엄쳐 나와 119구조대에 인계했다.”

- 본인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눈앞에서 그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군 생활하면서 생존수영과 전투수영을 배웠고 구명조끼도 있으니까 살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일단은 사람 생명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별로 할 수가 없었다.”

-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걱정하지 않았나

“아내에게 항상 했던 말이 ‘나는 물에 빠져도 죽지 않을 정도로 수영을 잘한다’는 것인데 평소에는 아내가 잘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하는 모습을 보더니 처음에는 놀라면서 소리도 지르더라. 안전하게 수영하는 모습에 안도했는지 나중에는 다리 위에서 조언도 해줬다. ‘여학생 코가 물에 잠긴다’면서 침착하게 대처해줬다.”

- 8살 막내아들은 어떤 반응이었나

“아들도 많이 놀랐다. 여학생을 119에 인계하고 나니까 몸에 난 상처가 보였다. 아들이 그걸 보면서 “아빠 피 난다”며 막 울었다. 그런데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까 아들이 제가 자랑스러웠나 보더라. 집에 아이들이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는 화이트보드가 있는데 슈퍼맨 그림이 그려져 있고, ‘우리 아빠가 아이를 구했다’고 적어놨다. 그 모습을 보니까 ‘내가 좋은 일 했다, 잘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 그날 이후 여학생 소식을 들었는지

“학교 선생님한테 연락이 와서 학생이 입원실로 내려왔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 직접 찾아가 보니 괜찮아 보였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이 중학생인 우리 둘째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녔더라. 그래서 ‘너하고 나하고 우연과 우연이 겹쳤다. 너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꼭 한두명은 항상 있을 거다. 나중에 기회 되면 좋은 모습으로 보자.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 많은 시민이 응원과 감사를 표현했는데

“제가 의인이라 그런 게 아니고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행동하셨을 것이다. 많은 응원과 걱정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살면서 보니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일도 있더라. 실망스러운 일들이 생겨서 힘들어하는 분들께서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세상이 좀 더 밝고 좋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

서지원, 이화랑, 김유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