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에 해외 입국자 숙소가 있다니 황당했죠.”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A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달 중순 한가득 짐을 싸들고 온 외국인들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모습을 봤다. 이 아파트에는 외국인 입주자도 종종 있다 보니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달 초에도 외국인 2명이 입주를 하자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명이 가져온 짐은 여행용 가방 9개의 양이었다.
알고 보니 이 아파트의 한 세대를 임대한 B업체가 해외에서 입국한 외국인들에게 이곳을 자가격리 장소로 빌려주고 있었다. 지난 12일 이 아파트에서 만난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 상황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빌리는 부동산이 한남동 인근에 몇 군데 있는데 그곳과 계약해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다들 쉬쉬해서 알려지지 않을 뿐 길 건너편 P아파트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이 불안감을 호소하자 관리사무소 측은 B업체에 “격리자들에게 장소를 제공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A아파트의 사례는 행정적으로 문제는 없다. 정부는 ‘에어비앤비(공유숙박)’ 형태로 운영되는 숙박시설도 자가격리 장소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공용 공간 없이 독립적인 부엌,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면 단기 임차한 아파트, 오피스텔, 주택에서 자가격리가 가능하다. 다만 이를 허용할지 최종 판단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한다.
A아파트 관할구인 송파구보건소 관계자는 “부엌이나 화장실을 공유하지 않고 독립적 생활이 가능하면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시설도 자가격리 장소로 허용하고 있다”며 “일반 내국민이 아파트에서 자가격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외국인이라고 해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A아파트 외에도 에어비앤비 형태의 자가격리 숙소 제공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인터넷에 ‘자가격리 에어비앤비’만 검색하면 ‘자가격리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내건 에어비앤비 광고를 찾을 수 있다. 입국 후 에어비앤비에서 자가격리를 마쳤다는 후기글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A아파트 주민 김모(43)씨는 “아파트 주민 중 자가격리자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임대업을 통해 2주 간격으로 새로운 격리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건 불안하다”며 “임대 업체가 방역이나 청소를 소홀히 한다면 자칫 바이러스를 양산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민들의 가장 우려하는 건 격리자가 무단이탈을 하는 경우다. 이 건물 1~14층은 사무실용 오피스텔이고, 15~27층은 아파트다. 각종 사무실이 오피스텔에 입주해있어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다. 지하에는 음식점, 카페, 매점 등 상가도 있다.
정부는 방역적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다중이용시설이 아닌 이상 에어비앤비를 격리장소로 쓰더라도 방역적으로 특별한 문제는 없다”며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격리되기 때문에 내부 소독이나 방역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만약 격리 도중 확진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보건소에서 방역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에어비앤비가 격리 장소로 이용되면서 행정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임시생활시설을 운영할 행정인력이 많이 들어 방역과 행정업무를 병행하는 데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국민 모두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긴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도 A아파트 사례와 같은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주민과 정부 간, 주민과 임대업체 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생길 수 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거주지를 숙박시설로 이용하는 것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규율해야 할지 내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