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작가도 절레절레…26년 독재자에 “늦기전에 떠나라”

입력 2020-08-14 00:18
벨라루스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EPA 연합뉴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너무 늦기 전에 물러나라”며 일침을 날렸다. 나흘째 이어진 시민들의 대선 불복 시위에 벨라루스의 지성이 힘을 보탠 것이다.

1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벨라루스의 기자 출신 작가 알렉시예비치는 이날 자유유럽방송 인터뷰에서 “1994년부터 벨라루스를 26년 연속 통치하고 다시 6기 집권에 성공한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평화로운 사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끔찍한 내전의 수렁에 내던지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떠나라. 당신은 그저 권력을 원할 뿐이고 당신의 욕망은 결국 피로 물든 채 끝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대선을 앞두고 루카셴코 대통령의 강력한 맞수로 꼽힌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를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난 9일 실시한 대선 개표 결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80.0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이겼고, 티하놉스카야는 10.09%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12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시민들이 루카셴코 대통령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대선 불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흰 꽃을 들고 거리로 나온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타스통신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벨라루스 대사관 앞에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한 여성이 풍자 포스터를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러자 재검표와 선거 무효화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수도 민스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불법과 편법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 9일부터 나흘 연속으로 열리고 있다.

이에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섬광탄, 물대포, 고무탄 등을 쏘고 심지어 실탄까지 발사했다. 또 시위 참가자뿐만 아니라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곤봉으로 구타당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최소 2명이 숨지고 250명이 넘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알렉시예비치가 벨라루스 경찰이 시위대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악마 같다”고 지적하며 러시아로부터 군병력을 지원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 이유다.

11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루카셴코 대통령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대선 불복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진압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벨라루스 내무부는 현재까지 최소 6000여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가로 3m, 세로 4m짜리 감방 한 칸에 최대 50명이 갇혀 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황이다.

양측의 충돌이 격화할수록 루카셴코 대통령을 향한 국제 여론도 나빠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날 체코 의회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벨라루스를 겨냥해 “아직 전체주의가 막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을 비판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벨라루스의 대선이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며 “폭력과 부당한 체포 및 선거 결과 조작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