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잡는 車는 옛말, 이젠 ‘없는 소리’ 만드는 시대

입력 2020-08-17 07:00
보행자를 위해 가상엔진음을 제공하는 친환경차를 표현한 모식도. 현대자동차 제공

듣기 싫은 소음을 줄이기 위해 힘썼던 자동차 업체들이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드는데 역량을 쏟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나 하이브리드 모델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소음이 작아 발생하는 문제가 있어서다. 일부 내연기관 모델에는 운전의 재미를 더한다는 차원에서 없는 소리를 입히는 작업이 더해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관련 업체들은 ‘가상 엔진 사운드’(가상엔진음) 등을 개발·적용해 소음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엔진이 아예 없거나 소음이 작아서 보행자가 차량의 접근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지면서 이같은 노력이 시작됐다. 가상엔진음은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지 않는 완전자율주행 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한 자동차 기술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친환경차는 가상엔진음을 의무 적용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차량이 시속 30㎞ 이하로 주행할 때 반드시 75㏈ 이하의 경고음을 내야 하고, 보행자가 알 수 있도록 전진 속도에 맞춰 가상 엔진 소리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쏘울 EV 등 전기차가 시속 20㎞ 이하 저속 운행이나 후진을 할 때 가상 엔진음을 내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전기차 그릴 커버를 이용해 만든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는 최근 세계 최초로 전기차 그릴 커버를 이용한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을 개발해 주목받은 바 있다. 소리를 발생시키는 액추에이터(Actuator)를 소형화해 그릴 커버 안쪽에 붙이고, 커버 자체를 스피커 진동판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기존 시스템이 구조상 의도했던 소리와 다르게 들리는 문제점까지 해결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그릴 커버를 스피커로 활용하면 스피커가 밖으로 노출돼 생기는 파손 위험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불리한 점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엔진음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경고를 위한 전자음만 출력하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방향지시등 소리와 충전상태를 알려주는 알람까지 전달할 수 있는 단계가 됐다. 엔진음뿐 아니라 음악 재생 스피커 등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나왔다.

현대·기아차는 ‘사운드디자인 리서치랩’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자동차가 내는 다양한 사운드를 연구하고 개발한다. 미래 친환경차에 들어갈 엔진 사운드를 비롯해 각종 차량 정보를 전달하는 경고음이나 알림음, 작동음 등이 연구 대상이다.

BMW 아이코닉 사운드 스포츠. BMW 코리아 제공

가상 엔진음은 운전의 재미 극대화에도 도움을 준다. BMW 코리아는 가상엔진음 ‘BMW 아이코닉 사운드 스포츠’를 출시한 바 있다. 주행모드에 따라 최적화된 음향효과를 내는 게 특징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다이내믹한 감성을 불어넣는 엔진음을, 컴포트 모드에선 절제된 음향효과를 적용했다. 에코 프로 모드에는 가상 사운드를 소거해 안락한 주행을 돕는다. 드라이빙 모드와 별개로 운전자의 취향이나 상황에 따라 사운드의 강도를 조절해 최적의 엔진음을 만들 수도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