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2명 살인 혐의 20대 부부…법원 ‘고의성 없다’ 무죄

입력 2020-08-13 17:43

법원이 세 남매 중 돌도 지나지 않은 자녀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부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살인 혐의를 적용해 30년을 구형한 검찰의 판단과는 달리 형량이 턱없이 낮게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 1부는 황모(26)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아내 곽모(24)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황씨에게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수강을, 곽씨에게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예방 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두 사람에게 2년간 아동 관련 기관에 취업제한도 내렸다.

앞서 검찰은 황씨에게 징역 30년을, 아내 곽모(24)씨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이들 부부는 자녀 2명을 숨지게 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부는 2015년 첫째 아들을 낳은 뒤 이듬해 4월 둘째 딸을 출산했다.

모텔과 원룸 생활을 전전해온 황씨는 2016년 9월 14일 원주의 한 모텔방에서 둘째 딸을 두꺼운 이불로 덮어둔 채 장시간 방치해 숨지게 했다.

이들 부부는 둘째 딸이 숨지고 2년이 지난 뒤 셋째 아들을 얻었으나 황씨는 지난해 6월 13일 생후 10개월 된 셋째 아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수십여 초 동안 눌러 사망에 이르게 했다.

검찰 조사에서 황씨는 둘째와 셋째 모두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황씨에게 살인 혐의 등을, 아내에게는 사체은닉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이들 부부는 둘째 딸 사망 이후에도 3년간 총 710여만원 상당의 양육·아동수당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법원은 살인과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공소사실만 유죄로 판단했다. 나머지 공소사실은 아동학대 및 아동유기‧방임, 사회보장급여 부정수급, 사기 혐의 등 3가지다.

재판부는 “황씨가 생후 5개월 된 딸 울음소리에 짜증이나 얼굴까지 이불을 덮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평소 딸을 매우 아꼈던 점, 곧바로 이불을 걷어줄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잠이 들었을 가능성이 큰 점, 딸 사망 후 크게 슬퍼하면서 자살을 시도한 점 등에 비추어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지난해 6월 생후 9개월의 막내를 숨지게 한 혐의도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황씨가 막내의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다소 부적절한 물리력을 행사하였을 가능성은 있으나, 물리력 행사 후에 자녀가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잠든 점, 자녀가 다른 이유로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아내의 막내에 대한 아동학대치사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막내에게 행사한 물리력의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한 점, 물리력 행사한 후 자녀가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잠든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아내가 자녀의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체를 유기한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이들 부부가 숨진 자녀의 사체를 땅에 몰래 묻어 은닉한 점, 자녀 세명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학대행위를 하거나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양육한 점을 유죄로 인정했다.

또한 딸이 사망한 뒤에도 담당 기관에 알리지 않고 양육수당 710만원을 부정수급한 점, 임대료를 지불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730만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대여한 점을 함께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모로서 신체적·정신적으로 올바른 양육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신체적 학대행위를 하거나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양육했다”며 “피고인들이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춘천지검 원주지청 관계자는 “항소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사안은 없다”며 “다만 판결문을 받아 본 뒤 살인 혐의에 대해 선고 이유를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원주=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