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남부의 섬나라 모리셔스 해역에 중유 1000여t을 유출해 일대를 기름 범벅으로 만든 일본 화물선이 애초 좌초된 원인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길이 300m, 총톤수 10만t짜리 대형선박이 사고 해역 같은 수심이 얕은 지대를 지날 이유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13일 해운업계와 일본 교도통신·포브스 등 외신에 따르면 모리셔스 바다에 대규모 해양오염을 일으킨 와카시오호(10만1932t)가 사고 해역으로 진입한 이유로는 두 가지 가능성이 거론된다. 우선은 모리셔스섬 남동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항해사가 몰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애초 와카시오호는 중국을 출항해 싱가포르를 거쳐 목적지인 브라질 투바라호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브라질로 가기 위해서는 인도양을 건넌 뒤 희망곶(Cape of Good Hope)을 거쳐 남대서양을 통과해야 한다. 와카시오호가 지난달 25일 암초와 부딪쳐 좌초된 모리셔스의 포인테 디에니 해역은 남인도양에 속한다.
주목할 점은 와카시오호가 사고 해역에 접근할 때까지 11노트(시속 20㎞)라는 일정한 속도로 항해했다는 사실이다. 포브스는 배의 항로를 추적한 위성 데이터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배가 ‘표준 속도로 항행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조타실에 있던 항해사나 선장이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중요한 단서다.
또 모리셔스 해안경비대는 배가 지나치게 섬 쪽으로 다가오자 여러 차례 교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한 시간여 만에 겨우 교신에 성공한 해안경비대는 배에 위험을 경고했지만, 선장은 되레 “항로는 안전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원들이 사전에 좌초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더 기우는 이유다.
다른 편에서는 ‘의도적으로 섬 근처로 향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정보도 나왔다. 인도양 한가운데를 지나는 길고 지루한 항해 끝에 모리셔스 인근에 가닿은 승무원들이 핸드폰 수신 신호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배를 더 섬 쪽으로 붙였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선내에서는 위성 인터넷을 통해 간단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비용 문제로 사용이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상선들은 항해에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배를 최대한 육지나 섬 쪽에 붙여 운항하는 경우가 잦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시 와카시오호가 화물을 싣고 있지 않아 흘수(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낮았다는 점도 경계심 없이 배를 저수심지대로 운항했다는 추측에 힘을 보탠다.
다만 모리셔스 현지 경찰의 조사가 진행 중인 현재까지 선원들이 넓고 안전한 항로를 놔두고 왜 위험한 저수심 해역을 항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선장·항해사들의 진술과 사고 당시 수심·코스·속력·기기 고장 여부 등 각종 항해자료를 바탕으로 자세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 프라빈드 주그노트 모리셔스 총리는 이날 추가 기름 유출 우려가 있던 와카시오호에서 성공적으로 기름 연료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는 “저장고에서 모든 연료를 펌프 작업으로 빼냈다”며 다만 100t가량은 아직 선체 다른 곳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본 미쓰이상선(MOL)이 운항 중인 와카시오호는 좌초 12일 만인 지난 6일에 배 뒤편 연료탱크가 손상돼 1000t이 넘는 중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기름은 산호초와 희귀생물이 가득한 바다로 퍼져 ‘천혜의 섬’과 주민들의 삶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