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전쟁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상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등을 시로 표현해온 에밀리 정민 윤(29)이 첫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의 번역·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열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에밀리 윤은 한국인, 이민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시에 담아내왔다. 특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재학 시절 논문을 작성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피해자들의 고통, 전쟁 범죄의 그늘 등을 날카로우면서 절절한 언어로 표현해냈다.
에밀리 윤은 시집 출간에 맞춰 귀국했지만 자가 격리로 인해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는 화상으로 진행됐다. 그는 “한국인으로 위안부 문제는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처음 들었다는 반응이 많아 굉장히 놀랐다”며 “미국에서 역사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아 시를 쓰게 됐는데 역사를 알게 돼 반갑고,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시집은 고발, 증언, 고백, 사후라는 4개 챕터 35편의 시로 구성돼있다. 이중 증언 챕터에는 고(故) 김순덕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연작시 ‘증언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톨릭 신자다/ 잊고 용서해야겠지만 그럴 수 없다/ 고개가 일본 쪽을 향할 때마다 나는 그를 저주한다/ 위안을 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열네 살에서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위안부’였고/ 나는 열이 났고 나는 불임이 되었고/ 나는 내 죽은 남편의 아이들을 기억한다/ 나는 괜찮았던 끼니를 기억한다 나는 혼자다”
에밀리 윤은 서문에서 ‘증언들’에 대해 “한국에서는 생경한 유형인 ‘found poetry’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찾은 시’라는 뜻의 ‘found poetry’는 일반적으로 시각 예술에서 자주 쓰이는 ‘콜라주’와 비슷하게 존재하는 텍스트를 부분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형태나 내용의 시를 만드는 기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시어 사이사이 공백이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이 시들을 소리내서 읽는다고 하면 떨리는 부분, 말 더듬는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데 그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떨림, 불편함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시집은 위안부 피해 사건에서 시작해 현대 여성들이 겪는 일상에서의 폭력으로 이야기를 확대해나간다. 이는 이민자 여성으로서 시인이 일상에서 겪었던 경험과 무관치 않다. 시인은 페미니즘 학자 도나 헤러웨이를 인용해 여성, 소수자로서의 더 많은 목소리를 들려줘 공감과 연대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상대적으로 많이 접해온 한국에서 시집의 가치에 대해 에밀리 윤은 “한국에서 이 책의 목적은 새로 알리는 게 아니라 유지시키는 것, 덧붙이는 것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2018년 미국 하퍼콜린스사에서 출간된 후 워싱턴 포스트로부터 “마음을 사로잡은 데뷔작…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국어판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등의 작품을 쓴 한유주 작가가 옮겼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