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인 P는 매우 무기력한 모습이다. 하고 싶은 것이라고는 컴퓨터 게임 뿐이다. 매사에 관심도 없다. 공부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만 보고 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거나 운동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P가 원래 이런 아이는 아니었다. 어려서는 활동적이고 친구를 좋아하고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니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치고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였다. 유치원에서는 창의성이 넘친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엔 ‘너무 활동이고 장난기가 많다. 숙제를 안 해 온다’ 등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친구를 좋아해 집에 오면 놀이터에 나가 아이들과 신나게 놀곤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활동성이 떨어지고 차분해졌다. 너무 활동적이라서 걱정했던 터라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숙제를 하려고 앉으면 멍하니 딴 생각에 빠져있거나 공상을 하곤 했다. 성적은 차츰 떨어지고 자신이 없어지는 듯했다. 중학교 이후엔 성적이 더 저하되었다. 그럴수록 게임에는 빠져 들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는 못하고 제지를 하면 부모에게 공격적으로 대했다. 부모님은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그런 거라 생각하여 거의 매일 게임 때문에 전쟁을 벌였다. 아이가 점점 더 무기력해지자 병원을 찾게 된다.
검사를 해보니 P는 우울감, 무기력감도 있지만 원래 타고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이하 ADHD)를 가지고 있었다. ADHD는 연령에 따라 보이는 증상이 달라지는 질병이라서 어려서 P처럼 지나친 활동성을 보인 경우도(30% 정도는 어려서도 비활동성을 보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과잉활동성을 많이 줄어든다. 대신 집중력 장애나 충동조절의 어려움을 보인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P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원도 늘어나고, 공부의 양이 늘어났다. 저학년 때처럼 스마트한 머리로만 학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숙제를 하려고 앉아도 집중이 안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다른 생각에 빠져들고 오래 앉아 있어도 과제를 다하기 힘들었다. 과제를 못하니 매일 선생님들이나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다. 성적은 점점 떨어져 갔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야’,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 인가봐!’ 자신 스스로를 비하하며 자포자기하기에 이르고 게임은 매우 흥미롭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빠져들기 쉬었다. ADHD의 특성은 ‘좋아하는 것에의 과몰입’이 있다. P는 게임에 과몰입하게 된다. 공부를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계속 성적이 떨어지는 좌절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하지만 부모는 노력이 부족해서 라며 나무라기만 한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에 의한 ‘학습된 무기력감’에 대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24마리 개를 방에 가두어 놓고 혐오스런 전기 자극을 반복해서 주었다. 처음엔 개들이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날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탈출하기 위한 모든 행동을 포기했다. 뛰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배운 거다. P도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졌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있어 봤자 성과가 없고 결과를 가지고 야단만 들으니 더는 노력도 하기싫고 흥미도 잃게 된 거다.
ADHD는 노력을 해서 극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집중력 저하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모른 채 어른들은 ‘노력이 부족해서’ ‘목표가 없어서 그렇다’며 다그치기만 했던 거다. ADHD 라는 방에 갇힌 P는 ‘성적 저하’라는 좌절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니 셀리그만이 한 실험 중 방에서 탈출할 의지를 잃어버린 그들처럼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진거다.
이럴 때는 아이의 우울, 무기력감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기력의 원인이 되는 ADHD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ADHD는 ‘마음의 병’이라기 보다는 ‘몸의 질병’에 가깝다. 그래서 치료의 효과도 빠르고 좋은 편이다. ADHD는 절대 ‘노력이 부족해서 게을러서 생긴’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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