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작은 마을서 전국 첫 ‘성평등 마을규약’ 탄생

입력 2020-08-13 11:38 수정 2020-08-14 10:50
지난해 7월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여성 정책 종합 박람회 '2019 여성 업(UP)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반지길' 탐방을 한 학생들의 소감문을 보고 있다. 반지길은 대구지역 근대여성들의 활약을 살펴보는 탐방로로 반지 형태이다. 또,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은반지와 패물을 기부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조직 '남일동 패물 폐지부인회'의 정신을 되살려 이름 붙인 길이다.

주민 수 200명 내외의 제주의 작은 마을에서 전국 첫 ‘성평등 마을규약’이 탄생했다. 마을의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 여성 참여를 보장할 실질적인 규정을 명문화했다. 주민들은 성별과 연령에 차별없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을 문화를 만들어자는 데 한 뜻을 모았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3리와 제주시 한림읍 한림3리 주민들은 올초 마을총회에서 성평등 마을규약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부녀회가 제출한 규약 개정안에는 마을 대소사 결정에 여성의 발언권과 의결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도3리의 경우 ‘가구당 1표’로 돼 있던 의결권을 ‘1인1표’로 바꿔 마을에 주소지를 둔 성인은 누구나 마을 일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상시 의사결정기구인 개발위원회 등 마을 임원 조직 구성시 여성 비율을 1/3로 명문화했다.

마을 일의 결정권이 중장년 남성 위주로 이뤄지는 문제점을 개선한 것이다.

신도3리는 마을의 모든 구성원들이 균등하게 발언과 결정 기회를 갖고, 성별과 연령의 차별없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키워가자는 지향점도 이번 규약 개정안에 삽입했다. 한림3리 역시 남성 위주의 기존 마을규약을 성평등을 보장하는 형태로 대폭 수정했다.

마을규약은 한 마을의 운영에 있어 ‘헌법’과 같다. 마을 발전의 목표와 방향은 물론 총회 운영, 임원 조직 구성, 상정안 결정 등 실질적인 절차가 들어 있어 공동체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주에서의 성평등 마을규약 탄생은 관습처럼 굳어져 온 마을 운영 기준에 대해 주민들이 스스로 불평등 요소를 깨닫고 수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주도는 13일 신도3리 마을회를 올해 ‘양성평등 디딤돌상’ 수상 단체로 최종 선정했다.

이현숙 성평등정책관은 “제주 여성의 삶에서 가장 가깝게 접속되는 공적 공간인 ‘마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규약 개정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제주 전체로도 의미 있는 행보”라며 “더 많은 마을에 성평등 마을규약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행정부지사 직속으로 전국 첫 ‘성평등정책관’ 직제를 신설했다. 이후 주민 일상과 정책 등 도정 전반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5개 마을의 성평등 마을규약 개정을 지원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