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개발했다는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 및 효능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인 3상이 생략됐고, 1·2상 데이터조차 공개되지 않는 등 졸속 개발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러시아측 주장에 대해 “백신에 있어 중요한 것은 최초냐 아니냐 하는 점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인과 전 세계인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이를 증명할 수 있도록 3상 임상시험에서 확보된 투명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신은 보통 3단계의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한다. 이중 3단계는 수만 명을 대상으로 백신을 상용화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로 알려져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크레믈린이 국가 위신을 세우기 위해 시민들의 건강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 등으로 흔들리는 러시아가 내부 불만을 타개하기 위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신의 이름인 ‘스푸트니크 V’ 자체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푸트니크 V는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 냉전 시기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의 이름이다. 스티븐 모리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 부소장은 “푸틴에게는 승리가 필요하다. 그는 스푸트니크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학계도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코로나19 대응을 이끄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러시아가 실제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했는지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서섹스대의 오히드 야쿱 과학정책연구단 박사는 “러시아 백신은 반쪽짜리로 맹물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세계보건기구(WHO)조차 러시아 백신에 대한 “엄격한 검토와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WHO는 현재 러시아와 접촉해 백신의 사전 자격심사 절차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