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통령 후보 지명된 첫 흑인 여성, 해리스…바이든 약점 커버할 ‘안전한 선택’

입력 2020-08-12 16:35 수정 2020-08-12 16:38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러닝메이트로 지목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AFP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지명했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을 ‘안전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해리스 상원의원은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도널드 해리스, 유방암 전문 과학자 시아말라 고팔란 해리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메이카 출신의 아프리카계, 어머니는 타밀족 출신의 인도계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해리스 상원의원은 미국 역사상 첫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자 첫 여성 부통령이 된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두려움이 없는 전사’이자 싸움꾼이자 이 나라 최고의 공직자 중 한 명인 해리스를 나의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고 발표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해리스 상원의원을 자신의 파트너로 지명한 것은 흑인 표심을 의식한 선택임을 인정했다”고도 전했다.

해리스 상원의원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직후 “조 바이든은 미국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다. 자신의 일생을 우리를 위해 싸우며 보내왔기 때문”이라면서 “대통령으로서 그는 우리의 이상에 부응하는 미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출신인 해리스는 워싱턴DC 소재 흑인 명문대인 하워드대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했다.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샌프란시스코 검찰국장과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거쳤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주를 지역구로 둔 초선의 연방 상원의원이다.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전투력이 뛰어난 ‘싸움닭’ 스타일로 유명한 해리스 상원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입을 상대하는 저격수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해리스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마약을 강권하는 사람(drug pusher)”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민주당의 첫 대선 후보 TV토론에서는 “바이든이 1970년대 흑백 인종 통합 스쿨버스 운행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당시) 한 소녀는 스쿨버스를 타고 매일 학교에 다녔다. 그 어린 소녀는 바로 나였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조 바이든(왼쪽) 전 부통령, 그리고 11일(현지시간) 바이든 전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지난달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함께 단상에 오른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해리스는 특히 바이든의 약점을 메울 맞춤형 러닝메이트다. 바이든이 77세 고령 백인 남성이라면, 해리스는 비교적 젊은 55세의 흑인·인도계 혼혈 여성이다.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에 델라웨어주가 정치적 텃밭인 ‘동부 사람’이라면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줄곧 지낸 ‘서부 사람’이다.

해리스 상원의원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강조하지만 과격한 인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경제전문매체 CNBC는 바이든이 부통령감으로 해리스를 지목한 데 대해 월가가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해리스를 선택한 것이 민주당이 진보보다는 온건에 가깝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문사 시그넘 글로벌의 창업자인 찰스 마이어스는 “바이든의 선택이 그가 온건 노선에 계속 머무를 것인지 궁금해하던 투자자들의 불안을 완화했다”면서 “온건주의자인 해리스는 주요 정치 이슈에서 바이든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바이든이나 당의 정책 노선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진보적인 민주당원들은 이제 상대적으로 신중한 정치적 본능을 지닌 두 명의 온건파가 그들을 이끌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 국토안보부 장관을 역임한 재닛 나폴리타노 전 애리조나 주지사는 해리스 상원의원에 대해 “그녀는 당 내에서 왼쪽에 치우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전직 검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석은 바이든의 일부 참모들이 “해리스의 정치적 야심이 지나치게 크다”고 비판한 것과는 배치된다. 바이든 역시 해리스가 ‘자기 정치’를 하면서 자신이 해리스에게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78세가 되는 바이든이 2024년 대선 출마를 포기한다면 해리스가 차기 후보 중 맨 앞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AP통신은 분석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일찌감치 부통령 후보로 여성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흑인 여성 중에선 해리스 의원과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캐런 배스 민주당 하원의원이, 백인 여성 중에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