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복구도 못했는데 또 비?…저수지 터진 산양1리 주민들의 애타는 속

입력 2020-08-12 16:19
경기도 이천 산양1리 마을에 파괴된 비닐하우스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지역은 지난 4일 마을에 있던 저수지 둑이 붕괴한 뒤 복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천=황윤태 기자

“비가 더 내릴 것 같아. 이미 미끄러운 땅에 또 쏟아지니 또 뭐가 쓸릴까 무서운 거야. 기후변화 때문이라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와야 그치는건지….”

경기도 이천 산양1리 이장 이종진(65)씨는 간신히 세워둔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4일 이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마을 뒤편에 있던 저수지의 둑이 무너졌다. 둑이 터지면서 물 6만2000여t이 순식간에 마을로 쏟아져 내렸다. 이 이장이 키우던 복숭아나무 50여주에도 며칠 동안 반쯤 잠겼다. 물이 빠진 과수원의 모습은 처참했다.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나무들은 이미 이파리가 축 처져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약분무차에 평소보다 더 진하게 농약을 타 뿌리는 일밖에 없었다.

이종진 산양1리 이장이 12일 과수원에 농약을 주고 있다. 이 이장에 따르면 복숭아나무는 종 특성 상 침수되면 뿌리부터 썩는다. 이천=황윤태 기자

12일 찾아간 이 마을은 집중호우로 인해 수해를 입은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마을에는 수해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산 중턱에서 쏟아지는 물을 정통으로 맞은 마을회관과 집들은 형체만 간신히 갖추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가재도구들로 보이는 쓰레기들이 곳곳에 산더미같이 쌓였다. 산 위에 있던 축사에서 떠내려온 분뇨 냄새도 났다.

군 장병들이 12일 경기도 이천 산양1리 마을에서 수해복구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육군 55사단 제공

군 장병 30여명은 주민들과 함께 포크레인으로 간신히 길을 내고 있었다. 마을 주민 최모(64)씨는 “집은 무사하지만 담장이 통째로 떠내려갔다”면서 “물이 차 있었을 때는 어디서 올지 모르는 시멘트 더미에 깔려 죽을까 무서웠다”고 말했다. 김모(70)씨도 “비가 계속 온다고 하는데 보일러가 완전히 침수돼 제습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허탈해 했다.

컨테이너 박스가 12일 경기도 이천 산양1리 마을의 한 농업용 통로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저수지 둑이 무너져 내리면서 마을입구에 있던 구제역 임시초소였던 컨테이너 박스가 500여m 떠내려왔다. 이천=황윤태 기자

과수원과 논밭 복구작업은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다. 마을회관에서 500m쯤 떨어져 있는 농업용 통로 한복판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임모(46)씨는 “지난해 이천시에서 설치한 구제역 임시 초소가 물에 떠내려 온 것”이라고 했다.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는 간이 화장실 등 수많은 쓰레기가 비닐하우스 잔해와 뒤섞여 있었다. 임씨는 “쓰레기가 처박힌 논과 밭은 수확할 수도 없다”고 허탈해 했다.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도 심각했다.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이봉순(86) 할머니는 “물난리 직후 자식들이 내려와 집은 복구했지만 밭은 모조리 쓸려나갔다”면서 “가슴이 벌렁거려 병원에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군 장병들이 12일 경기도 이천 산양1리 인근 저수지에서 무너진 둑을 복구하고 있다. 육군 55사단 제공

이날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또다시 예고된 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 이장은 “지난 11일 새벽에 비가 무섭게 내렸는데 또 물난리가 날까 잠을 못 잤다”면서 “논밭 복구뿐 아니라 저수지를 복구할 건지, 아니면 땅으로 메울지 결정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큰 난리가 났던 지역이지만 재난구역으로 선포되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우리 마을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기도 이천이지만 안성과 충북 음성군에 더 가까운 곳이어서 집중호우의 피해를 그대로 입었다”면서 “재난구역 지정이 어렵다는 시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이천=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