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질투? 러시아 과대포장?…코로나 첫 백신 발표에 ‘발칵’

입력 2020-08-12 16:19
임상 3상 부재에 논란…접종과 시험 동시 진행
전문가 “부작용 등 안정성 입증되지 않아”
러시아 “서구권의 정치적·조직적 폄훼”
1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발표한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 신화연합뉴스

세계 최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11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나왔다. 이 백신의 이름은 ‘스푸트니크Ⅴ’로 러시아의 전신인 구(舊)소비에트공화국이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이름 스푸트니크에서 따와 백신 분야에서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담았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러시아 백신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미국 ABC방송에 출연한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요한 것은 백신 최초 개발이 아닌, 미국인과 전 세계인들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보건부는 “러시아 백신의 품질과 효능, 안전성에 대해 알려진 자료가 없다”며 우려했다. 이어 “환자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이에 서구권 국가들의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폄훼라고 반박했으나, 단순히 정치 조작으로 치부하기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1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발표한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 사진은 지난 7월 15일 지원자들이 임상시험을 위해 백신을 투여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스푸트니크V의 개발은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와 비윤리성 문제로 점철돼 있다”고 보도했다. 스푸트니크V는 임상 3상 시험이 없었다. 임상 3상은 대규모 인원을 상대로 예비 약물의 안전성을 검토하는 마지막 시험 단계다.

러시아도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백신 임상 3상 시험을 마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연구소의 알렉산더 긴즈버그 연구소장은 “3상 시험을 계속하면서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의약계는 “임상시험을 생략한 실험 약물을 공식 백신으로 등록해서는 안 된다”며 “수천~수만 명을 상대로 몇 개월간 진행해 부작용 등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백신을 ‘1상 단계’로 분류하고 “어떤 백신이든 다양한 임상 시험과 검사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센터가 개발한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백신의 사용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가디언은 임상시험을 둘러싸고 외부의 압력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매체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군인 다수가 참여해 이미 참여 강압과 관련한 윤리적 문제가 불거진 상태다. 백신의 효능에 대해서도 군인 집단은 민간인들보다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 경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임상시험 지원자들이 부작용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는 압박을 느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백신은 현재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러시아 보건당국은 임상시험에 관한 과학적 자료는 공개하지 않고 “2차례 접종으로 장기간의 면역이 형성되고 임상시험 결과는 면역이 2년까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만 강조하고 있다.

이 백신의 항체가 체내에서 얼마나 오래 지속하는지, 혹은 어느 정도의 방어가 가능한지 등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자칫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백신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됐다는 인식이 생길 경우 코로나19 창궐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에서 개발해 세계 최초로 승인한 백신. AP연합뉴스

워싱턴대 바이오테크놀로지 연구소의 마이클 킨치 박사는 “에이즈바이러스(HIV)의 초기 약물을 생각해 보라”며 “우리가 완벽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내 추측으로 1세대 백신은 그저 평범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헤이븐 대학의 러시아 전문가인 매슈 슈미트는 “백신에 대한 불신이 향후 대중들 사이에서 백신 접종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백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가 오히려 반(反) 백신 운동을 자극하고, 미국 등 일부 지역에서 음모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