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주재 일본 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둘러싸고 한·일 간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 날 조짐이 보인다.
부산 동구는 지난 4일 시민단체가 신청한 ‘평화의 소녀상’ 도로점용 허가 신청을 승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일본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마루야마 코헤이 주부산 일본 총영사가 최근 최형욱 청장을 찾아 “소녀상 점용허가를 내려준 것은 빈 조약에 전면 위배”라면서 한일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외교부는 최근 ‘일본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 설치는 국제 예양(禮讓)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부산시와 시의회·동구청 등에 전달했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에 악재가 더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차원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던 2017년 초 외교부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오래 기억하기에 더 적절한 장소로 소녀상을 옮기는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도 문제를 제기했다. 국토부는 지난달 15일 공표된 ‘부산광역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하 개정안)’이 도로법에 어긋나 대법원의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지난 16일 부산시의회에 보냈다. 도로법상 조례로는 점용료 면에 대한 내용을 정할 수 없다는 지적을 담은 공문이었다. 즉, 점용료 면제 조례는 도로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시의회와 시민단체 안팎에서는 국토부가 수일 내에 시의회를 상대로 정식으로 소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민정 부산시의원에 따르면 소녀상 설치 점용료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외교부와 국토부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에서도 외교상의 국제예양 및 관행 측면에 대한 우려를 시의회에 전달해 왔다.
소녀상은 2016년 12월 설치됐다가 동구청이 도로법 시행령 위반을 이유로 철거했다. 이에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자 동구청은 재설치를 승인했고, 관련 조례도 개정됐다. 지난해 1월 4일 소녀상에 대한 관리 주체를 명시하고, 지난해 8월 14일 도로 점용허가 대상에 포함해 조형물로 인정, 점용료를 내왔다. 이어 소녀상에 대한 도로 점용료를 전액 감면하는 개정안이 시의회를 통과하자, 시민단체는 지난달 동구에 도로점용 허가 신청을 했고 구가 지난 4일 이를 승인하며 소녀상 설치는 사실상 합법화 됐다.
동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도로 점용을 승인한 만큼 허가를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