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에 사과받은 옥살이…‘이춘재 8차사건’ 형사 “죄송하다”

입력 2020-08-12 09:53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53)씨가 3일 오후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재심을 청구한 윤모(53)씨에게 31년 만에 사과했다.

이춘재 8차 사건 담당 형사였던 심모씨는 지난 11일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심 4차 공판에서 “윤씨에게 죄송하다. 저로 인해서 이렇게 된 점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씨는 사건 발생 이듬해인 1989년 7월 용의 선상에 오른 윤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와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한 끝에 자백을 받아 구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건의 진범은 이춘재로 밝혀졌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가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고, 심씨가 31년 만에 사과한 것이다.

윤씨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는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며 “현장검증 당시 담을 넘어 피해자 집으로 침입하는 등 주요 행위를 재연하지 못했는데 심씨를 포함한 수사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또 “윤씨의 자술서를 보면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맞지 않는다”며 “심씨는 이처럼 한글 능력이 떨어지는 윤씨에게 조서를 보여주고 서명 날인을 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도 했다.

이에 심씨는 “당시에는 과학적 증거(현장 체모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감정 결과)가 있어서 윤씨를 범인이라고 100% 확신했다”고 변론했다. 심씨는 또 “자백을 받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같은 조였던 최모 형사(사망)가 사건 송치 후에야 ‘조사 당시 윤씨를 때렸다’고 말했었는데, 큰 사건을 해결했다는 공명심에서 그랬던 거 같다”고 털어놓았다.

다음 재판은 오는 24일 열린다. 이 공판에서는 당시 형사계장 등 경찰관 2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춘재. 연합뉴스, SBS 화면 캡처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양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윤씨는 이듬해 7월 범인으로 검거됐다.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당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3심 재판부는 윤씨의 주장을 기각했다.

윤씨는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다. 그는 이춘재가 지난해 11월 범행을 자백하자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1월 윤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