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박용택 11년간 발목 잡은 ‘타격왕 논란’

입력 2020-08-12 05:00
LG 트윈스 베테랑 외야수 박용택이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KIA 타이거즈와 프로야구 정규리그(KBO리그) 홈경기를 앞두고 은퇴 투어를 사양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LG 트윈스 베테랑 외야수 박용택(41)이 음주·도박·폭행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가담하거나 연루되지 않고 프로야구 인생 19년을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긴 일은 2009년 ‘타격왕 논란’이다.

박용택은 그해 롯데 자이언츠 포수 홍성흔(44·은퇴)과 타율을 경쟁했다. LG 투수들은 롯데를 상대할 때마다 홍성흔을 볼넷으로 걸러내며 안타를 칠 기회를 주지 않을 때 박용택은 타수를 줄여 타율을 관리했다. 그 결과로 박용택은 타율 0.372를 기록해 0.001차이로 홍성흔(0.371)을 밀어내고 타격왕을 차지했다.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덤을 보유한 롯데, 홍성흔의 전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를 포함한 야구팬들은 인터넷뉴스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글로 박용택에게 십자포화를 가했다. 표적은 김재박 당시 감독을 포함한 LG 선수단 전체로 확대됐다. 박용택의 타율 관리는 ‘졸렬하다’는 일각의 지적으로 이어졌다. 박용택은 곧 ‘졸렬택’이라는 조롱조의 별명을 얻었다.

박용택은 그해 정규리그 폐막 이튿날인 9월 27일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모든 것이 내 책임이고, 내 의지였다”며 팬들에게 사과했다. 그해 LG를 지휘하고 물러났던 김 전 감독과 동료들에게까지 뻗힌 비난 여론을 자신에게 되돌려놓는 동시에 팬들의 분노를 외면하지 않고 소통할 생각이었다.

그 이후로 기부와 봉사 활동을 전개했고, 팬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한 2013년 12월 10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4년 전의 타격왕 논란을 다시 언급하며 “나에게 페어플레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쑥스럽다”며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박용택이 돌아선 다른 팀 팬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과 반복해 온 사과는 온갖 사건사고로 얼룩졌던 프로야구에서 오랜 기간을 몸담고도 장외 논란에 휘말리지 않은 모범적인 선수생활로도 나타났다.

LG 트윈스 1번 타자 박용택이 지난 4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한화 이글스와 가진 2020시즌 프로야구 퓨처스(2군)리그 홈경기에서 7회말 1사 2·3루 때 적시타를 치고 1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택은 이제 출전 횟수와 안타 수가 지난해부터 두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선수 인생의 황혼기로 다가가고 있다. 2020년은 박용택이 2년 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LG와 계약을 연장하면서 은퇴 시즌으로 지목한 해다. 박용택은 2002년에 입단한 LG에서 한 번도 유니폼을 갈아입지 않고 꼬박 19년을 활약한 ‘원팀맨’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은퇴 투어가 거론됐다.

박용택의 은퇴 투어가 처음 논의된 곳은 지난 6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이사회다. 같은 달 경기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던 박용택이 복귀를 앞둔 지난주, 그의 은퇴 투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첨예한 논쟁을 몰고 왔다.

은퇴 투어는 마지막 시즌을 보내는 선수가 소속팀 이외의 나머지 모든 팀의 홈구장을 방문할 때마다 현역 시절의 노고를 축하받고 작별인사를 하는 행사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승엽(44·은퇴)이 마지막 시즌을 보낸 2017년에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의 협조로 은퇴 투어를 펼쳤다. 지금까지 KBO 차원으로 공인된 유일한 은퇴 투어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가 논의될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박용택에게 몰아친 반발 여론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 2178경기에 출전해 2478안타를 때리면서 프로야구 사상 개인 통산 최다 안타로 기록한 박용택이지만, 이승엽만큼의 국가대표 이력을 쌓거나 한 시절을 상징할 만한 족적을 남긴 선수가 아니라는 식의 이유들이 그의 은퇴 투어를 가로막았다.

가장 많이 언급된 반대 사유는 2009년 타격왕 논란이다. 11일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둔 LG의 1군 훈련에 합류한 박용택이 “다 읽었다”는 인터넷뉴스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의 상당수는 11년 전의 논란을 가장 뜨거운 온도로 재점화하고 있다. 박용택은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야구팬들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박용택은 1군 훈련 합류를 앞둔 지난 10일 구단 관계자에게 은퇴 투어를 사양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박용택의 은퇴 투어는 LG의 마지막 키움 히어로즈 원정경기로 예정된 오는 21일이 지나면 완전하게 무산된다. 박용택은 12일부터 1군에 콜업되면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