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증인 나온 첫 현직 대법관…“고생이 많습니다”

입력 2020-08-11 15:19
이동원 대법관. 대법원 제공

“중요한 사건을 맡아 고생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건강 유념하시고,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형사36부 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판에 이동원 대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직 대법관이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법관은 이날 증언을 마친 뒤 재판장인 윤 부장판사가 소회를 묻자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면서도 “그렇지만 재판은 필요한 일이고, 증거에 대한 공방이 있으면 (증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퇴정하기 전 재판부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법정을 벗어났다.

이 대법관은 2016년 2월 서울고법 행정6부 재판장으로 있으면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을 맡았다. 검찰은 당시 임 전 차장이 ‘국회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법원행정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이민걸 전 기조실장을 통해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보고’ 등의 문건을 이 대법관에게 전달했다고 본다. 이른바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법관의 판단은 당시 행정처 입장과 실제 유사했다. 앞서 1심은 헌재가 통진당 정당해산 결정 이후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렸고 법원에는 다시 판단할 권한이 없다며 각하했었다. 그러나 이 대법관은 행정처와 같이 법원에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한 권한이 있다고 봤다. 다만 ‘정당이 해산되면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도 당연 상실된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대법관은 2016년 3월 이 전 기조실장을 만나 문건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찜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참고할만한 게 있을까 해서 보긴 했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할 텐데, 읽어서 면목이 없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행정처 문건에 대해 “논거들이 그렇게 와 닿진 않았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더 이상 안 봤다”며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기조실장에게 문건을 받으면서 윗선이나 행정처 입장이란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그렇게 얘기했으면 화를 냈을 것”이라며 “(이 전 기조실장이) 선의로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이 대법관은 2018년 7월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통진당 소송에 대해 “선례가 없었고 법원이 심판권이 있다고 선언한데 의의가 있다”며 “자랑스러운 판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