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Fn터치]빛바랜 금융시장 시금석, 미 10년만기 재무부 채권

입력 2020-08-11 15:11
금값-증시 랠리 부채질 언제까지?
미 정부부채 부담 등으로 상당기간 유지가능성



<사진:CFI>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달러화, 금과 더불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통한다. 주식시장 급락 시 대체 투자 수단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10년 이상 보유하다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직계비속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해도 세금이 면제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재무부 채권 투자=애국’으로 치부될 정도라고 한다.

특히 10년만기 국채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모기지 채권이나 회사채 뿐 아니라 다른 나라 국채의 가산금리를 정하는 기준(벤치마크)이 된다. 나아가 투자자들에게는 경제상황을 진단하는 온도계 역할까지 해왔다.

그런데 요즘 이 10년만기 국채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명성에 금이 생겼다.
실질금리는 발행주체인 재무부가 만기 때 지불키로 한 명목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뺀 것이다. 채권 금리는 내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지 않고 제3자에 빌려준 데 대한 기회비용인데 물가상승률을 빼고 난 금리가 마이너스라면 채권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지난 7일 10년만기 채권 금리는 0.535%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신용시장 패닉이 발생한 3월 19일 대비 0.61%포인트나 하락한 수준이다. 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나타내는 국채 브레이크이븐레이트(BEI)는 1.619%로 1.06%포인트나 상승했다. 그 만큼 실질금리가 하락한 것이다. 명목금리는 최근 2주 연속 0.6%를 밑돌고 있다.

명목금리 하락이나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은 모두 연준의 유동성 확대와 관련이 있다. 명목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미국 경제가 기대만큼 회복속도가 빠르지 않아 연준이 계속 유동성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현재 디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인플레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은 경기회복과는 관계없이 시중에 돈이 과하게 풀리는 데 따른 우려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미국의 총통화(M2) 증가속도가 심상치 않다며 통제하지 못하면 인플레 압력과 금융시장 붕괴가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로 인해 같은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달러보다는 차라리 배당이나 이자가 붙지 않아도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 기대심리에 금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달러를 기피하는 것은 미 국채 발행이 늘어날수록 발행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동전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자산인 금투자와 함께 일부 전문가들의 과열지적에도 불구하고 위험자산인 주식에 대한 투자, 특히 일부 성장주에 대한 투자 랠리가 식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투자심리가 작용했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블랙록 등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은 이처럼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지자 금외에도 다른 대체 수단을 찾고 있다. 우선 표면 이자만을 지불하는 국채와 달리 인플레를 감안한 TIPS에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채권은 실제로 물가가 오르면 투자자에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헤지상품으로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담당 CIO는 “주가하락에 대비한 헤지수단으로서 10년만기 재무부 채권은 이제 기껏해야 B-등급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릴 정도다.

이외에도 자산운용가들은 미 연준이 6월부터 5000억달러 규모로 매입키로 한 신규 발행 회사채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모기지유동화증권(MBS) 등도 대체 수단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WSJ는 소개했다.

문제는 경기상황이 크게 반전되지 않는 한 10년만기 재무부 채권의 마이너스 실질금리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 연준의 관심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디플레 상황 타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월 0.6%(전년동기 대비)로 0%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하반기에도 이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오히려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한 미국 내 고용시장 회복 지연에 따른 낮은 임금상승률, 주택가격 하락 가능성 및 글로벌 공급망 정상화 지연 등으로 하반기 물가 압력이 더욱 낮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인플레를 잡기 위해 수십년 동안 구사해온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상원칙을 포기할 것이라는, 즉 인플레 부양방안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