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폭발 6일 만에 내각 총사퇴…“대통령·총리, 지난달에도 폭발 위험 보고받아”

입력 2020-08-11 15:02
지난 4일 질산암모늄 폭발 참사가 발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 근처에 한 시민이 서있다. 벽에는 '정부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문구가 써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4일 수도 베이루트항에서 폭발 참사가 벌어진 지 6일만에 레바논 내각이 총사퇴를 발표했다. 폭발 참사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10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고위 관료들은 변화를 막기 위해 더러운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벽은 더 높아졌다”면서 “베이루트 폭발은 고질적인 부패의 결과”라고 말했다.

폭발 참사 이후 베이루트 도심에선 지난 8일부터 사흘째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이후 마날 압델-사마드 공보장관, 다미아노스 카타르 환경장관, 마리 클라우드 나즘 법무장관, 가지 와즈니 재무장관 등 장관 4명이 잇달아 사임했다.

디아브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올해 1월 이슬람 시아파 정파 헤즈볼라의 지지를 얻어 출범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와 정치개혁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폭발 참사까지 겹치면서 총사퇴 수순을 밟게 됐다.

레바논은 명목상 대통령제지만 총리가 실권을 쥐는 내각제에 가깝다. 또 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 기독교 마론파 등 18개 종파를 반영한 독특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게 원칙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레바논 총리와 대통령이 베이루트항에 쌓여 있던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에 관해 지난달 이미 보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레바논 국가안보국 보고서에 따르면 디아브 총리와 미셸 아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서한을 한 편 받았다. 한 고위 안보 당국자는 “이 서한은 베이루트항의 질산암모늄을 즉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사법당국의 조사 결과를 전한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그러나 미셸 아운 대통령은 폭발 참사 후 기자들에게 “그 물질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