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거주시설인 경기도 광주시 소재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이 수년간 모은 수십억원의 후원금을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용하지 않고 땅을 사는 데 쓰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쌓아둔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정서적 학대와 할머니들의 생활과 투쟁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을 방치하는 정황도 발견됐다.
경기도는 11일 이런 내용을 담은 나눔의 집 민관합동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송기춘 나눔의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은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관합동조사 결과 나눔의 집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을 위한 후원금 홍보를 했으며 여러 기관에도 후원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지난 5년간 약 88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집했다”면서 “후원금의 액수와 사용내역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며, 등록청의 업무검사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행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는 등록청(10억원 초과인 경우 행정안전부)에 등록해야 한다.
발표에 따르면 국민들이 후원한 돈은 나눔의 집 시설이 아니라 운영법인 계좌에 입금됐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 약 88억원 중 할머니들이 실제 생활하고 있는 나눔의 집 양로시설로 보낸 금액(시설전출금)은 2.3%인 약 2억원이었다.
반면 운영법인이 재산조성비로 사용한 후원금은 약 26억원으로, 토지매입과 생활관 증축공사, 유물전시관 및 추모관 신축비, 추모공원 조성비 등으로 사용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나머지 후원금은 이사회 회의록 및 예산서 등으로 봐 국제평화인권센터, 요양원 건립 등을 위해 적립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조사과정에서 “간병인이 ‘할머니, 갖다 버린다’ ‘혼나봐야 한다’ 등 할머니에 대한 언어폭력 등 정서적 학대의 정황도 발견했다”며 “특히 의사소통과 거동이 불가능한 중증환자 할머니에게 집중됐다”고 했다.
아울러 할머니들의 그림과 사진, 국민들의 응원 편지 등을 포대자루나 비닐에 넣어 건물 베란다에 두는 등 할머니들의 생활과 투쟁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을 방치하고 있었다고 조사단은 지적했다.
조사단은 이 중에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자료도 있었다며 제1역사관에 전시 중인 원본 기록물은 습도 조절이 되지 않아 훼손되고 있었고, 제2역사관은 부실한 바닥공사로 바닥면이 들고 일어나 안전이 우려되는 상태였다고 했다.
송 단장은 “나눔의 집은 초창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 불교계의 노력과 헌신으로 시작됐다”며 “피해자였던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역사적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역사적 진실을 세상에 증언했다”고 사회에 기여한 공도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점차 법인 및 시설 운영에서 문제점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가 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민관합동조사단으로부터 최종 조사결과를 받아 세부적으로 검토한 뒤 경찰에 수사의뢰 하는 한편,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처분 할 예정이다.
한편, 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은 지난달 6일부터 22일까지 행정과 시설운영, 회계, 인권, 역사적 가치 등 4반으로 나눠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법인)과 노인주거시설 나눔의 집(시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및 국제평화인권센터 등에 대해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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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