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 와해’ 이상훈 전 의장 2심 무죄…“위법수집 증거”

입력 2020-08-10 17:59 수정 2020-08-10 18:37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이 전 의장에 대한 공소사실의 근거가 된 압수수색이 위법하게 이뤄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에 대해 “범행의 공모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하는 게 아니란 걸 명심해달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배준현)는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 전 의장과 삼성 계열사의 전·현직 임직원 등은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설립되자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라 ‘그린화’ 전략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수립·시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의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이 전 의장의 공소사실 근거가 된 ‘CFO 보고 문건’ 등 핵심 증거 대부분이 위법하게 수집된 것으로 판단했다. 당초 영장에 특정된 장소와 다른 곳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거나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이 보고 받았다는 직접적 증거가 없고,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만으로는 범행 공모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을 제외한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일부 피고인에게 적용한 법리는 1심과 크게 달라졌다. 1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소속 수리기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지휘했기 때문에 파견 관계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었다.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와 삼성전자서비스의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근거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간 근로자파견 관계를 부정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수리기사의 구체적 업무 배정에 관여하지 않았고, 구속력 있는 업무 지시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박 전 대표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 파견 혐의는 1심과 달리 무죄로 뒤집혔다.

다만 항소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며 파견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는 해당한다고 봤다. 노조원들에 대한 탈퇴 종용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선 1심과 같이 대부분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전 의장과 함께 기소됐던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이날 1심보다 2개월 감형된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았다.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와 박 전 대표도 1심보다 형량이 2개월이 줄어든 징역 1년과 1년4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는 1심과 같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측은 선고 이후 입장문을 내고 “2심 재판부는 상당수 증거자료가 효력이 없다고 판정했고,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 누군지는 분명하다”며 “검찰의 상고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