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언론계 거물이자 대표적인 반중 인사인 지미 라이 빈과일보(애플데일리) 사주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일 체포됐다. 미국 정부가 홍콩보안법 시행을 이유로 중국과 홍콩의 고위 관리 11명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지 약 이틀 만에 홍콩은 보란 듯이 반중 언론인 체포로 맞대응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보안법 전담 조직인 국가안보처는 이날 새벽 호만틴 지역에 있는 라이의 자택에서 그를 체포했다. 홍콩 당국은 이날 외국 세력과 결탁해 홍콩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사기를 모의한 혐의로 39~72세 남성 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이날 200명 넘는 인원을 투입해 정관오 지역에 있는 빈과일보 사옥을 압수수색하고 주요 경영진을 체포했다. 빈과일보는 압수수색 현장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날 경찰에 체포된 사람 중에는 라이의 두 아들도 포함됐다고 홍콩 공영방송 RTHK가 전했다.
라이는 지난 6월30일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정부가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중국 정부의 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에 충격을 받고 1990년 넥스트매거진,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그전에는 파산한 의류공장을 인수해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 아시아 주요 의류기업으로 키워낸 이력이 있다. 중국 정부는 1994년 빈과일보가 톈안먼 시위 강경 진압의 주역인 리펑 총리를 강도 높게 비난하자 본토에 있는 지오다노 매장을 폐쇄해버렸다.
미 CNN방송은 라이가 미 정부를 상대로 중국에 보다 강경한 노선을 취하도록 로비를 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면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미 정부의 홍콩인권법 제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이런 그를 ‘홍콩을 어지럽히는 인물’이자 반중 시위 배후에 있는 반체제 인사 4인방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해온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트위터에 “이번 체포는 홍콩 정부가 미국의 제재에 겁먹지 않았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라이는 올해 초에도 반중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돼 기소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보안법 시행 이후여서 상황이 다르다. 홍콩 내 반중 인사 처벌 조항을 담은 이 법은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이다. 그는 지난 5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내가 언젠가 감옥으로 보내질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크리스 융 홍콩기자협회 회장은 “우리는 한두달 전만 해도 홍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