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비 예보가 장마 막바지에 또 빗나갔다. 기상청이 당초 ‘10일 새벽 6시까지 서울과 경기북부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찔끔비’만 내리고 만 것이다. 출근길 교통 대란을 우려했던 시민들은 지각을 면한 것에 안도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하루 앞 강수량 예측도 빗나가면서 일각에서는 “기상청 오보는 일상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4.0㎜에 그쳤다. ‘새벽 많은 비’로 인한 출근길 대란을 대비해 서울시는 대중교통까지 증편했지만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 이달 초 집중호우로 큰 침수 피해를 입었던 경기도 파주의 누적 강수량도 38.5㎜에 그쳤다.
기상청은 전날 오전 서울과 경기북부에 11일까지 최고 500㎜의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고, 같은 날 오후에는 누적 강수량 최고치를 300㎜로 낮췄다. 이 예보는 10일 오전 30~80㎜로 내려왔다. 기상청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는 8일 오후부터 200㎜ 이상의 비가 내린 곳도 있다”고 해명했다.
시민들은 우려했던 비가 쏟아지지 않아 안도하면서도 한켠으로는 기상청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서모(32)씨는 기상청보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도로 CCTV 영상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시간 도로상황를 보면 사람들이 우산을 썼는지, 비가 얼마나 오는지 다 보인다”며 “이보다 더 정확한 예보가 어딨겠냐, 날씨 정보는 CCTV가 최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광진구에 사는 이모(30·여)씨는 이날 출근길 대란 우려에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동료 직원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한마디였다고 한다. 이씨는 “함께 일찍 일어나 출근한 동료가 ‘서울 강수량은 1년 할부로 오는 거냐’며 화를 냈다”며 “오늘은 늑장부린 사람이 승자”라고 했다.
일부 시민은 유난히 자주 발생하는 오보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날 오전 강남역 출근길에서 만난 심모(27·여)씨는 “앞으로 기상청 예보는 절대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7일에도 집중호우가 온다길래 회사 미팅에 차를 끌고 가지 않았는데 비는 전혀 내리지 않았다”며 “들고 나온 장우산도 결국 어디에 두고 나왔는지 잃어버려 하루가 엉망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비 피해가 컸던 지역에 사는 한 시민은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너무나 야속하다고 했다. 광주에서 가방 납품 관련 자영업자 김모(30)씨는 지난 주말 500㎜가 넘는 집중호우로 쑥대밭이 된 양동시장의 주고객이었다. 그는 “오전에 볼 일이 있어 가보니 사장님들이 진흙을 퍼내고 그릇가지들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이들을 보니 날씨 예보라도 정확해야 생업이 걸린 분들이 복구계획이라도 제대로 세울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지웅 강보현 송경모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