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95억 ‘만삭 아내 살인사건’ 남편 금고 2년…그 이유는

입력 2020-08-10 16:42 수정 2020-08-10 16:46

보험금 95억원 때문에 임신 7개월의 아내를 숨지게 만들었다는 이른바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사건’의 남편이 파기환송심에서 금고 2년을 선고받았다.

아내를 살해할 동기 뿐 아니라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전고법 형사6부(허용석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열린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남편 A씨(50)에게 살인 혐의 대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상 치사죄를 적용해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살인을 전제로 보험금을 청구하며 적용된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8월 승합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인근을 지나던 중 5차선 갓길에 세워진 8t 화물차를 충격, 동승석에 탄 아내 B씨(24)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B씨는 25개 보험에 가입돼 총 95억원에 달하는 보험금이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판부의 판단은 크게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범행일 수도 있지만 A씨의 주장대로 졸음운전의 가능성도 있고, 각종 증거 역시 불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B씨를 살해했다고 판단해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결혼 직후인 2008년부터 B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그의 생명보험만 총 25건을 가입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사고 2개월 전인 2014년 6월에는 최대 31억여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가입한 것 역시 아내를 살해할 동기로 봤다.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도 360여만원에 달해 A씨의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점도 고려했다.

반면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형사재판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거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는 A씨가 처한 경제적 상황, 사고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재판부는 A씨가 특별히 큰 돈을 쓸 곳이 없고, 다른 이들에게 받을 돈과 부동산 등이 많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보험을 많이 가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보험설계사의 권유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점, 그가 보험을 일종의 예·적금과 같은 자금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B씨를 비롯해 자녀·부모 등 가족 모두의 보험을 꾸준히 들었던 점도 판단의 근거로 봤다. 과거 A씨의 모친이 수술을 할 때 혜택을 본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보험에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A씨가 교통사고의 방식이나 충돌방법을 연구한 정황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인근 CCTV 영상에 나온 A씨의 차량 상향등을 분석해도 그가 핸들을 고의로 틀었다고 보기 어렵고, 사고를 앞두고 22시간이 넘도록 일을 해 졸음운전의 가능성이 있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차량 운행 방식을 고의로 볼 수도 있고, 보험을 다수 가입한 점을 비롯해 말과 행동에 의심이 가는 정황이 있다”면서도 “다만 객관적인 증거 없이 범죄 사실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임신부였던 만큼 운전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했다”며 “피해자 가족들과 합의를 하지 못한 점, 나이·직업·범행 정황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