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한곳, 안한곳 다 터졌는데…여야 새삼스런 ‘4대강’ 설전

입력 2020-08-10 14:17
폭우로 둑 일부가 유실된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배수장 인근 낙동강(왼쪽 사진)과 제방이 무너진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창녕군, 전북소방본부 제공, 연합뉴스

기록적 폭우로 전국 각지에서 물난리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사업의 홍수 예방 효과를 두고 정치권이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먼저 4대강 사업을 꺼내든 건 야권이었다. 앞서 7, 8일 이틀간 남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 일부가 무너지자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는 ‘섬진강 등에 4대강 사업을 했다면 이번 물난리를 막았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10일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하고 나서며 여야간 뜨거운 설전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4대강 사업의 폐해는 이미 온갖 자료와 연구로 증명됐다.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해서 당신들의 과오가 용서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 의원은 야당을 향해 ‘남 탓’이 아닌 ‘위기 극복 동참’을 촉구했다. 그는 “아직 재난은 진행 중이다. 역대급 물난리 속에서 내일부터는 태풍이 온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재난에 맞서 힘을 모아 극복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배수장 인근 낙동강 둑에서 응급 복구 작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곳은 폭우로 전날 오전에 길이 40여m가 유실됐다. 경남 창녕군 제공, 연합뉴스

9일 오전 낙동강 제방 유실로 침수된 창녕군 이방면 일대. 창녕소방서 제공, 연합뉴스

9일 부산 강서구 서낙동강이 최근 내린 집중호우로 수위가 상승하고 흙탕물로 변해 있다. 낙동강 홍수통제소는 8일 오후 부산 구포대교 지점과 낙동강 대구 성하리 지점에 각각 홍수 주의보를 발령했다. 연합뉴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남 탓부터 하고 있다. 정말 제정신이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맞냐”면서 “앞에서 열심히 전투에 임하고 있는데 뒤에서 발목 잡는 형국”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국정을 운영해 본 정당이라면, 이럴 때일수록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고자 해야 한다”며 “남 탓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고 역설했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도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천창녕보 상류 둑이 붕괴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한 뒤 “4대강사업 안 해서 섬진강 범람 운운하던 통합당, 합천창녕보가 물 흐름을 막아선 낙동강 둑이 무너졌으니, 뻘쭘해지겠다”고 비꼬았다.

앞서 통합당 정진석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4대강 사업이 없었다면 이번에 어쩔 뻔했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4대강 사업을 끝낸 후 지류·지천으로 사업을 확대했더라면 지금의 물난리를 좀 더 잘 방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자유한국당 시절 ‘4대강 보 파괴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정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4대강에 설치된 보를 때려 부수겠다고 기세가 등등하다”면서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8일 낮 12시 50분께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강물이 도로 위로 차오르고 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연합뉴스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의 제방이 전날 내린 폭우에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같은당 조해진 의원도 “4대강 사업 당시 현 여권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반대로 섬진강 준설과 보 설치를 못 했는데 그때 했다면 이렇게 범람하거나 둑이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료 출신 송석준 통합당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전국적 수해를 보며 4대강정비를 안했다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더 처참해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그렇게 목놓아 4대강사업을 반대하던 분들이 작금의 상황을 보고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다. 4대강에 이어 진작 지천정비에 신경썼어야 할 정부가 너무 오래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4대강 지류지천 정비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페이스북에 “MB 시절 지류·지천 정비를 하지 못하게 그렇게도 막더니 이번 폭우 피해가 4대강 유역이 아닌 지류·지천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이제 실감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청양 왕진교 일원 금강에 발생한 녹조(왼쪽 사진)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 뉴시스

물난리 와중에 4대강 사업을 들고 나온 통합당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낙동강도 터지고 영산강도 터졌다. 4대 강의 홍수예방 효과가 없다는 게 두 차례의 감사로 공식 확인된 사실”이라며 “4대강 전도사 ‘이재오’씨도 4대강 사업이 사업이 홍수나 가뭄대책이 아니라 은폐된 대운하 사업이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통합당이 덮어둬야 할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내야 새삼 욕만 먹는다”고 적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일으키고 강을 살린다며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은 22조원의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붓고도 이른바 ‘녹조라떼’ 발생 등 생태환경 훼손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아직까지도 타당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3년과 문재인정부 때인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이뤄졌는데, 이는 홍수 피해 예방과 연관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2013년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이 아닌 한반도 대운하 사업 재추진을 위한 사전 작업의 성격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