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때는 ‘애플’, 코로나로 풀린 돈은 ‘이곳’으로 몰린다[유동성 파티, 불안한 내돈]

입력 2020-08-10 11:25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유동성 랠리’는 금융자본의 본산인 미국의 월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넘쳐나는 달러가 주식과 금 등 주요 자산 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가격이 함께 오르는 이례적인 현상도 눈길을 끈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금융시장의 현주소다. 시장에서는 “달러만 빼고 다 오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들어 미 달러 인덱스(미 달러화 지수)는 하향 추세다. 달러 인덱스는 유로·엔·파운드·캐나다 달러·스웨덴 크로나·스위스 프랑 등 주요 6개 통화와 비교한 미국 달러화 가치다. 지난 달 30일에는 92.94까지 하락하면서 2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막대한 규모의 달러를 시중에 쏟아부은 영향이 크다. 돈이 넘치면 돈 가치는 떨어진다.

달러 약세가 이어지면서 유동성은 곧 대체재인 금으로 빠르게 향하고 있다. 뉴욕금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2월 인도분 금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한국거래소 금시장에서도 금 현물 1g당 가격은 올초보다 40% 가까이 치솟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경제가 불안해질 때 주식과 채권 대안을 모색하는 투자자들이 찾는 자산이 금”이라며 “코로나19가 국제적인 ‘골드 러시’를 촉발했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금값이 향후 6~9개월 안에 사상 최고치를 찍을 것이다” “3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오르내린다.

유동성 랠리는 주식시장에서 더 활발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고 경제 재개 기미가 보이거나, 백신·치료제 개발 소식이 나올 때마다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유동성은 ‘주도주’로 몰리는 특성을 보인다. 코로나 사태 이후 월가의 주도주는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가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언택트) 소비·업무 등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아마존과 애플, 페이스북 등의 2분기 실적은 월가의 컨센서스(실적 전망치 평균)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마존의 경우, 2분기 매출액이 889억 달러(약 105조8000억원)를 기록하면서 1년 전보다 무려 40%나 증가했다. 애플은 597억 달러(약 71조원)로 지난해 동기보다 11% 늘었다. 코로나19로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에 몰린 영향이 크다. 페이스북 역시 186억9000만달러(22조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돈은 후각이 뛰어나다. 경제위기 이후의 새로운 먹거리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돈이 지향하는 곳은 창조와 혁신이다. 대표적인 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애플’이다. ‘미국의 몰락, 중국의 부상’이 회자될 금융위기 당시 애플은 아이폰 시리즈를 통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며 미 경제의 기사회생을 이끌었다. 2008년 4분기 애플은 256억 달러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는 당시 불황기에도 애플이 아이패드와 같은 혁신적인 신제품을 과감하게 출시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꼽힌다.

금융위기가 탄생시킨 ‘스타’가 애플이라면 코로나 위기 속 강자는 ‘테슬라’가 꼽힌다. 친환경 전기차 제조 및 청정에너지 회사인 테슬라는 올 들어서만 주가가 265%나 치솟았다. 지난 2분기 매출액은 60억4000만 달러(약 7조2300억원)로, 지난해 동기 4억800만 달러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테슬라의 장기 주가 전망을 내놓으면서 주당 2070~2500달러로 제시했다. 현재 테슬라 주가는 주당 1499달러(약 178만원)다. 전문가들은 “테슬라는 기술혁신과 함께 환경 보전, 우주 여행 같은 소비자들의 잠재적 기여·성취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 시장은 어떨까.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10년 전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자동차주가 떠올랐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차의 시가 총액이 128조원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풀린 유동성은 IT·콘텐츠 산업으로 확 쏠리고 있다. 온라인과 비대면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이 주도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 3개 업체는 이달 초 기준 시가총액이 102조원에 달했다. 1년전(52조원)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이달 들어 주식시장이 역대 최고의 유동성 장세에 돌입한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두가지로 모아지고 있다. 강세장이 올까, 아니면 거품이 빠질 타이밍인가. 넘치는 돈이 주는 고민거리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